회복되는 가정에 있는 3가지

강승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4/17 [09:19]

탕자의 비유를 묵상해 보면 잃어버린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 가정이 회복되는 모습을 묵상할 수 있다. 소통이 되고 신앙을 전수하는 행복한 가정으로 회복되려면 가정에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로, 가정에 ‘자유함’이 있어야 한다. 탕자는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잘 살아보려고 도시로 갔지만, 결국 아버지께 받은 유산을 모두 잃고 실패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탕자의 성공을 바라며 유산을 주었을까? 아닐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방탕함과 실패할 것을 알았지만 실패할 자유를 주었던 것 같다.

 

가정에 자유함이 있을 때 자녀들의 실패는 끝이 아니라 탕자처럼 아버지의 품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하듯이 가정은 실패해도 포용해 주고 이해해 주는 부모의 격려와 따뜻한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이 방황하고 집을 떠나더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가정에는 ‘자존감이 회복’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실패한 둘째 아들이 “아버지 저는 아들 자격이 없습니다. 품꾼의 하나로만 봐 주셔도 감사합니다.” 라고 집에 와서 엎드려 말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오히려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고 기뻐하며 송아지를 잡고 큰 파티를 연다.

 

아버지는 탕자가 건강하게 돌아온 이유 하나만으로 기뻐한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품꾼으로 맞이해도 문제 없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존귀한 아들로 탕자를 받아준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구겨진 자존감, 망가진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었던 것이다.

 

자존감은 ‘자신을 존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자존감은 자존심과 다르다. 자존심은 높아도 자존감이 낮은 자녀들이 많이 있다. 이런 자녀들은 남들에게 센 척 하면서 허세를 부리지만, 자기 안에 있는 열등감을 숨기고 열등감에 시달리며 사는 자녀들이다.

 

문제는 내 자존감의 근거를 “하나님의 시선에 두는가?”, 아니면 “세상의 평가에 두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자존감을 세상의 업적과 성취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탕자의 비유를 보면 하나님의 관점은 다르다.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탕자는 파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로, 가정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탕자 귀가 잔치의 기쁨이 가득한 자리에 큰아들의 불평이 들린다. 아버지의 관점과 큰 아들의 관점이 평행선을 달린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을 용서하고 잔치를 베풀지만 큰아들은 억울해 하며 분노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 한 사람은 기뻐하고 한 사람은 분노한다.

 

사실 아버지와 큰 아들은 둘 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다르다. 큰 아들은 ‘조건적인 사랑’을 말하고, 아버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큰 아들은 내가 동생보다 더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고 소리친다. 잔치는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해야 한다고 아버지에게 호소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못났기 때문에 더 사랑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더 연약하기 때문에, 더 실패했기 때문에 더 사랑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예수님은 알려준다. 우리의 가정은 이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회복되는 가정에는 자유함이 있고, 자존감이 회복되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가득하다. 5월에 모든 가정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 강승찬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