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를 보낼까?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2/23 [17:27]

제사장은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이고,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 앞에 선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제사장이 활동할 때는 나라가 평화로운 시기이고, 선지자가 활동할 때는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이다. 선지자는 악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사람이다. 모두가 찬성할 때 반대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모두가 Yes할 때 No라고 할 수 있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

 

이사야의 거룩 (Holiness of Isaiah)

 

“화로다 나에게 화로다 내가 망하였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느니라”(사 6:5).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마주하고 자신의 부정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 스랍 천사 중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단에서 벌겋게 타는 숯불을 집어 가지고 나에게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이렇게 말하였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이제 네 죄는 사라졌고 너는 용서받았다.'고 했다.

 

인간은 계속하여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인간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결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

 

이사야는 주님의 거룩함을 마주하고 주님의 임재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압도되어 순종하게 된다. 우리의 부르심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과 만남에서 시작된다.

 

딤후 2:20-21절에 그릇에 대한 비유가 있다. 큰집에는 금그릇, 은그릇만 아니라 나무그릇 질그릇 등 다양한 그릇이 있다. 이중에서 주인이 쓰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다.

 

하나님의 부르심 (Calling of God)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 것인가?'(사 6:8), 소명은 부르심이고, 사명은 보내심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 기슭으로 부르시고, 아론과 함께 애굽으로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부르시고, 땅끝으로 보내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부르셨고, 은사를 주시며 세상으로 보내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지속적인 순종의 여정이다. 그것은 매일 그분을 위한 우리의 계획을 포기하고, 모든 일에서 그분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견유학파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그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는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다녔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날을 밝은데 시대는 어둡군요”

 

이사야의 응답 (Responding of Isaiah)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헌신이란 몸들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이 개념은 죽은 동물을 바치는 것과 관련된 구약의 희생제사와 대조된다. 자신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이다. 신자의 삶의 모든 측면이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순종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

 

산 제사가 있으면 죽은 제사도 있고, 영적 예배가 있으면 육적예배도 있다. 죽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신앙 생활이 아니라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이고, 육적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예식을 지키는 것이다.〠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장, 구세군라이드교회

▲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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