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힘들지 않단다

글ㅣ정원준,사진ㅣ권순형 | 입력 : 2010/10/28 [14:50]

“하나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번 여행은 멜번에 계신 호주 선교사님들과 그분들의 가족들을 모시고  한·호 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교회를 개척하고 올해로 5년을 맞게 되는 시점에 많이 지쳐있었고 앞으로 어떤 목회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가고 있었기에  목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요청했다.

“하나님, 일을 통해 보람을 얻게 하지 마시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을 갖게 해 주세요!”

▲ 루시가 넘어져 큰 부상을 입은 인천공항 'cafeview' 레스토랑 입구. 세계적인 공항이라 자화자찬하는 인천공항의 안전실태는 낙제점이었다. 석종열 집사가 사고지점을 가르키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여행 내내 나는 이 기도를 드렸다. 일이 비록 힘들어도 내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싶었다. 이 기쁨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할지라도 실패의 인생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새벽 4시에 멜번공항으로 가야 했기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가방 하나 챙기는 것도 왜 그리 힘드는지 사람 사는게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날씨는 어떨지 어떤 옷을 챙겨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꼭 가지고 가야 하는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잠을 설치고 공항에 도착해서 일행들을 만나니 전날 밤 똑같은 고민들로 힘들었다고 했다. 모두 부시시한 얼굴이었다.

제일 먼저 만난 이는 바바라 마틴과 그녀의 일행들이었는데 놀란 것은 이번 여행의 최고 연장자인 루시(Lucy G. Lane) 여사가 나와 있는 것이었다. 올해로 92세를 맞이하는 그녀가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염려가 앞섰지만 여전히 한국에 대한 열정과 그리움이 얼마나 강한지 감동스러웠다. 그녀 옆에는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며 설렘으로 가득차 있는 손녀딸 죠지아가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비행기는 이륙하기 시작했고 우리의 긴 여정은 시작되었다. 좁은 공간 안에서 10시간 넘게 가야 하는게 쉽지는 않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설치고 도착한 인천 공항은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부산으로 가야 했기에 국내선 수속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시드니에서 출발한 일행들을 만났다.  모두 한국 방문에 대한 설렘으로 흥분해 있었다. 수속을 마치고 조금의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 일행은 식사를 하기 위해 공항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곳에서 정말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일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식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두세 사람씩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나 또한 막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루시가 쓰러지는 것이었다. 장거리 비행으로 지친 그녀가 어지럼증으로 쓰러지는지 알았다.

다행히 옆에 있던 일행이 그녀를 붙잡아서 머리는 다치지 않았다. 그녀를 눕히고 쉼의 시간을 갖게 하려고 할 때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종아리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빨리 지혈시키기 위해 손수건을 갖다 댔지만 피의 양이 많은 것으로 보아 단순한 상처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응급조치사들이 와서 손수건을 들처냈을 때에 종아리 절반 부분이 찢어져 있었다. 마치 부풀은 풍선이 터진 것처럼 연약한 살이 벌어져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는 입구에 턱이 있었는데 그곳에 종아리가 스치면서 넘어지게 됐는데 연로하고 오랜 시간 비행을 통해 다리가 더 부어있었던 것 같았다.

응급조치사들과 함께 공항 내에 있는 병원으로 루시를 옮겼다. 봉합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루시의 상태를 본 의사는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인천에 있는 인하대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상태를 지켜 본 바바라가 루시를 서울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의사로서 한국에서 오랜 세월 동안 선교사역을 했던 바바라 마틴(한국명 민보은)은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아는 의사가 있으니 그곳에서 치료를 받자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단지 종아리의 찢겨진 상처가 문제가 아니라 엑스레이 결과 엉덩이쪽 골반이 골절되었기 때문이었다. 문제가 더 심각해져 갔다. 다른 일행들은 행사일정 때문에 먼저 부산으로 출발해야 했고 바바라와 루시의 손녀딸 죠지아와 함께 나는 이 긴급한 상황을 해결해 나가야 했다. 처음에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했다. 한국에 연고도 없는 외국인들이 여행 중에 이런 일을 당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때부터 바바라는 세브란스 병원측과 수시로 전화해서 이런 긴급한 상황을 알려 도움을 요청했다. 전화연결이 쉽지 않았다. 바바라가 알고 있다는 담당 의사는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외국인 담당부서와 연결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나중에 그 의사와의 접촉을 갖기로 했다. 다행히 권순형 발행인이 주고 간 핸드폰이 있어 계속해서 그쪽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길을 모색해 나갈 수 있었다.

손녀 딸 죠지아는 나름대로 호주에 있는 가족들과 보험회사와 연락하며 분주하게 일을 처리해 나갔다. 다행히 오기 전에 여행자 보험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처음에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원무과에 돈 처리가 안 되면 수술을 할 수 없기에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많이 했었다. 후에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비를 보니 하루에 60만원이나 되었다. 병원비 비싸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렇게까지 비쌀 줄은 알지 못했다. 수술비와 치료비까지 하면 엄청난 금액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입이 딱 벌어졌다. 

일단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다리 봉합 수술을 받았다. 더 늦춰지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술을 받는 동안 응급실 다른 침대에서 젊은 여자가 신음 소리와 함께 침대를 흔들고 있었다. 주변의 이야기로는 자살을 하기 위해 약을 먹었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무슨 일로 그런 안타까운 결정을 했는지.

문뜩 그녀의 아름다움이 루시의 노쇠한 종아리와 겹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루시도 저렇게 아름다운 젊은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러나 아룸다운도 잠시뿐이고 헛된 인간의 의지할 끈이지 아닐까?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저 여자도 인생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어 저렇게 고통스럽게 절규하고 있지 않을까?

 
▲ 본지 권순형 발행인(오른쪽)은 지난 10월 8일 오전, 루시 레인 여사가 입원해 있는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 문병하고 호주로 귀국했다. 왼쪽부터 루시레인 여사, 권나미 영문편집위원, 민보은 선교사, 조성일 실장, 조지아(루시 레인 증손녀)      ©크리스찬리뷰

종아리 봉합 수술을 마치고 사립 구급차를 불러 루시를 서울로 옮겼다. 마치 007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터진 일에 다가 호주에서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병원 응급실로 그곳에서 다리 봉합수술을 받고 또 즉시 서울로 옮겨야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에 도착해서 절차를 마치고 병실로 루시를 옮겼을 때는 새벽 3시가 되었다. 다행히 다음 날 4시간에 걸친 골절 수술은 잘 되었고 손녀딸 조지아에게 루시의 간호를 부탁하고 바바라와 난 행사장인 부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뜻밖의 일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부산 일정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오자 아버지께서 사고를 당하셨다는 소식이 왔다. 평소 자전거를 즐기시던 아버지께서 안개가 낀 아침 승용차와 접촉 사고가 있어 병원에 계신다는 것이었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으셔서 한 달 뒤에 퇴원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평소 긍정적이시고 재미있게 인생을 사시는 분이라 병원에 도착해서 뵈올 때 밝은 미소를 잊지 않으셨다. 오히려 본인 때문에 자식에게 근심을 끼치게 돼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함께 한 아버지는 그날 밤 지난 세월 동안 있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 가운데 내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있었는데 미움과 사랑에 대한 부분이었다.

“원준아, 신앙생활하면서 교회 내에서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힘들더라. 우리 교회 남선교회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데 나를 괜히 미워하고 시기하는 사람이 있었지. 조 집사라는 사람인데 내가 교회에 오기 전에 본인이 남선교회를 주름 잡았는데 내가 가서 사람들이 나를 따르니까 시기하더라.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비방하고 다닌 거야. 얼마나 밉고 화가 나던지. 많이 힘들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를 가기로 결심하고 미움의 감정으로 잠을 설치고 있는데 갑자기 방 안이 환해 지더니 밝은 십자가가 내 앞에 비춰지는 거야. 얼마나 놀라고 감격했는지. 그 순간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미움의 감정이 깨끗이 사라지는 거였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거야. “

아버지께서는 잠시 뒤 아버지다운 농담과 함께 내게 중요한 깨달음을 알려 주셨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는데도 말이다. 한 달이 지나니까 그 집사의 못된 행동을 보니까 또 미워지는 거야. 이것 참 사람이라는게… . 그리고 얼마 뒤 그 조 집사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지. 내 마음에 갈등이 생기더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도 아프다고 하니 병원에 찾아 갔지. 가서 위로 하고 나올 때는 보태라고 손에 돈을 쥐어줬단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단다. 그 조 집사가 퇴원한 뒤로 교회에서 나를 보면 얼굴을 들지 못하고 부끄러워하고 만나는 사람들한테 내 자랑을 하는 거야. 지금은 얼마나 사이가 좋아졌는지 모른단다. 사랑이 문제를 해결하는 거야.”

그리고 아버지께서 인천에서 누나가 운영하는 문방구를 도와 주실 때 이야기를 하셨다.

“사람들은 그 초등학생 아이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게 귀찮고 힘들지 않았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단다. 얼마나 즐거운지 아니. 나는 그때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냈단다. 힘든 건 왜 그런지 아니? 그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 아이들을 사랑하면 하나도 장사하는 게 힘들지 않단다.”

꼭 예수님께서 내 문제에 해답을 아버지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목회도 그렇고 가정생활,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힘들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진리를 알려주셨다. 그러지 않을까? 삶이 힘든 것은 대부분 관계의 문제에서 오는데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호 선교 12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학교, 그리고 병원 시설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사랑의 씨앗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는지 새삼 놀라울 따름이었다. 호주로 돌아와 어제(21일) 루시가 입원해 있는 Epworth Boxhill Hospital을 방문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2주간 입원치료하고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었다.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하셨다.(편집자 주: 루시는 10월 22일(금) 오후 Camberwell에 있는 Epworth Camberwell Hospital로 옮겼다.)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이제 많이 나아졌어요. 가끔 걷는 연습도 하고요.”

그렇게 고대하던 한국 방문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미소는 전혀 녹슬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사고를 통해 하나님의 돌보심에 더 감사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감사한지 알아요, 원준? 한국 가기 전에 여행자 보험을 들었는데 처음으로 들은 거였어요. 그런데 이런 일을 겪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얼마나 다행인지. 단돈 150달러의 보험비에 한국에서의 모든 병원비를 다 해결하게 됐으니 말이에요. 그리고 지금 이곳 호주에서의 병원비도 내가 2차 세계대전 때 군대에서 간호사로 있어서 정부에서 모든 비용을 지불하게 됐어요.”

지금 있는 곳은 사립병원이라 병원비가 엄청 비싼데 정부에서 다 지불해 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감사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돌보심과 역사는 계속됨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의 배는 정말 맛있는데. 호주와 일본의 배 맛하고는 비교할 수 없죠.”

루시는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에 한 가지가 한국의 배라고 말했다. 여전히 아직도 집에서 한국 음식을 해 먹는다고 하는 그녀에게서 모습은 호주인이지만 그의 속 사람은 한국에 이미 물들어 있는 한국 소녀를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한국을 사랑한 그녀. 그녀들과 같은 이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병실을 나오며 그녀가 한 말이 내 마음에 남는다.

 “예전에는 우리가 한국교회를 도왔지만 지금은 한국의 교회가 호주를 돕고 있잖아요.”

식어가는 호주교회에 한국 이민교회들이 세워져 영적 회복을 이끌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녀의 건강한 회복을 바라며 다시 한 번 한국 교인들을 대신해 감사의 마음을 루시와 호주교회에 전하고 싶다.

 

글/정원준|멜본우물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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