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Giza)

좌충우돌의 성지순례(15)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2/28 [12:55]
이집트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피라미드(Pyramid)와 스핑크스(Sphinx)이다. ‘카이로’에서 조금 떨어진  ‘기자’(Giza)라는 곳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 개의 피라미드가 있다. 

민박에서 만난 청년 두 명과 함께 기자로 가는 택시를 탔다. 실랑이 끝에 30파운드로 합의했다. 피라미드가 가까워질 쯤에 어떤 사람이 택시를 세운다. ‘라마단 기간’이라 안에까지 갈 수 없다고 한다. 반신반의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리려고 하니 택시 기사가 돈을 더 요구한다. 청년들은 한 옥타브 올린 야단치는 목소리로 한방에 기사의 요구를 제압했다. 

이곳 여행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처음과 끝이 언제나 다르기 때문이다. 차를 세운 사람은 알고 보니 ‘전문 호객꾼’이었다. 그는 사람이 없는 뒷골목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어디로 가냐”고 몇 번 물어 보았으나 대답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그의 손 안에 있었다.  그가 안내하는 조그만 사무실로 들어갔다. 도보로 피라미드를 구경하기에는 너무 머니 낙타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낙타를 타고 가는 코스는 두 종류가 있었다. 첫 번째 코스는 1시간으로 피라미드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 보는 것이고, 두 번째 코스는 2시간으로 3개의 피라미드에 가서 사진까지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함께 간 청년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가격 흥정은 마치 줄다리기 하는 것 같았다.  청년들은 그가 제시한 1/3 가격으로 두 시간 코스의 낙타를 타는 개가를 올렸다.

▲ 이집트 기자지역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 개의 피라미드     ©김환기


 피라미드 (Pyramid)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건조물인 피라미드는 고대 왕국의 전성기인 기원전 2700년경에 만들어 졌다.  이집트 전체에서 94개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대체로 국왕, 왕비 등 왕족의 무덤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무덤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라미드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피라미드이며, 이집트인은 “메르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중에서 기자의 3대 피라미드가 가장 유명하다.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큰 피라미드이기에 ‘대 피라미드’라고도 불린다. 바로 옆에 아들 및 손자 파라오의 피라미드가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47m, 밑변 230m, 경사각 51도 50분으로 정확하게 쌓아져 있다. 사용된 돌은 한 개의 무게가 약 2톤이나 되는 큰 돌 약 230만 개를 써서 만들어졌다. 가까이 가니 돌 하나의 높이가 내 키보다도 컸다. 정말 불가사의하다. 이런 엄청난 돌을 어디서 가지고 왔으며, 어떻게 이렇게 높고 정교하게 쌓을 수 있었을까?

뿐만 아니라 피라미드의 경이로운 점은 아마도 그 거대한 구조물의 방향일 것이다. 각 능선은 거의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그 각도의 오차는 진북(眞北)에서 5분 밖에 벗어나 있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어서, 우연한 배열의 결과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또한 현대 20세기의 건축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정확성은 도저히 인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이다. 105m 높이의 '상승통로'는 완벽한 배역에서 1cm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 피라미드가 건조될 당시 천구(天球)의 북극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용자리의 알파별을 지표로 삼아 이 통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놀라운 배열로 미루어 보아, 피라미드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해시계이고, 달력이고, 동시에 천문대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 낙타 수고비까지 지불하고 낙타관광을 즐긴 필자     ©김환기


 스핑크스 (Sphinx) 

피라미드를 지키는 의미로 세워진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진 스핑크스(sphinx)는 '교살자'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이다. 스핑크스는 원래 이집트어로는 '살아 있는 형상'이라는 의미를 가진 ‘후 헤레마쿠트’(Hu Here- maakhut)이며, 아랍 이름은 '아불 훌'(Abul Hul)로서 '공포의 아버지'란 의미를 갖고 있다. 전체가 하나의 석회암으로 조각된 것으로서 주변을 골짜기같이 깎아서 만든 것이다. 즉 피라미드처럼 단을 쌓아서 올라가며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돌덩이를 깎아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자의 스핑크스는 전체 길이 60미터 높이 20미터 석회암으로 되어 있다. 스핑크스는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앞에 있기 때문에 카프레 왕 때인 기원전 255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카프레 왕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제작법이 다르고 석재의 산지와 공법도 다르다고 한다.

스핑크스의 코는 깨져 있다. 스핑크스뿐 아니라 이집트 안의 석상은 거의 다 코가 없다. 나폴레옹이 대포를 쏘아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설도 있으나, 문화재에 심취해 있던 나폴레옹이 그러한 일을 했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다른 주장으로는 이슬람교의 우상 숭배 금지 때문에 파괴되었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이슬람교도들이 스핑크스의 코를 부수면 스핑크스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터키 병사들이 포격 연습을 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스핑크스는 이집트 외에 시리아, 페니키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등지에서도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서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라는 이른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내어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그것은 사람이다.”라고 대답하자, 스핑크스가 물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낙타 (Camel) 

관광이 끝나고 낙타를 탄 상태에서 같이 안내한 꼬마가 수고비를 따로 요구하는 것이다.  계약은 자기와 했지 꼬마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미터가 넘는 낙타 위에 앉아 있는 우리를, 돈을 더 주지 않으면 내려 주지 않을 기세였다. 어쩔 수 없이 꼬마에게 돈을 건네주었다. 돈을 받자마자  “낙타도 수고하지 않았느냐”며 낙타 수고비를 달라고 한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경험이 나중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바가지를 쓰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모든 거래가 끝나자 그는 친절하게 우리에게 택시를 잡아 주었다. 기사가 “얼마면 탈거냐”고 묻기에 가격을 제시하였으나, 그 가격으로는 갈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옆에 서 있는 택시로 갔다. 그는 우리가 제시한 가격에 가겠다고 하니, 처음 기사가 자기 손님을 빼앗았다며 시비를 거는 것이다.   

카이로 택시는 거의 다 미터기가 없다. 있더라도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출발 전에 흥정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잔돈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카이로 터미널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잔돈이 없다며 거스름 돈을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버스 출발시간이 가까워져서 어쩔 수 없이 거스름돈을 받지 못하고 내려야만 했다.  

정말 이곳은 내 체질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을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흥정이 취미인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나라이다. 싼 물것들을 흥정해서 더 싸게 살 수 있다면 이 만큼 좋은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나에게 이집트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다.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었다. 아직 방문할 몇 군데를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아기 예수'가 피신했고, 콥틱교(Coptic, 이집트 기독교)의 박물관이 있는 '올드카이로' (Old Cairo)로 향했다.  

 

김환기 

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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