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촌장 노인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6/25 [12:02]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나환자촌은 사람이 살지 않는 외계 어느 별 같았다. 예전에 유랑하던 한센병 환자를 한 곳에 모아 정착시킨 마을이었다. 먼지를 뒤집어 쓴 풀들이 독 오른 뜨거운 태양열을 말없이 참아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마을을 돌아보던 나는 촌장 노인을 만났다. 갈라진 논바닥 같은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균이 침입했던 왼쪽 눈은 노란 황태가 끼어 있었다. 그러나 깔끔한 바지와 산뜻한 남방셔츠는 그의 성격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그가 자랑스런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 막내아들이 지난해 서울대학교 시험 봤어요. 그런데 아깝게 떨어져서 지금 재수를 하고 있어요. 이 놈이 아주 공부를 잘 해요."

그의 말 속에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아들이 찾아오는지 물으니, 바람결에 먼 풍문으로 들은 얘기라 한다.

그 노인의 입에서 과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대전의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진급이 보장되는 평탄한 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육십 년대였던 그 시절 그 병은 천형이었다. 몇 번을 죽으려고 했지만 생명이란 게 참 모질었다. 죽어지지가 않았다.

몇 년 후 그는 집을 나와 거지가 됐고 남의 집 문 앞에 가서 한 끼 밥을 구걸했다. 밥 대신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때는 죽도록 매를 맞기도 했다. 그 시절만 해도 문둥이가 아이들 간을 빼먹는다는 괴담이 돌던 때였다. 세상은 그를 마귀같이 병균같이 대했다. 그는 자기처럼 한센병이 든 사람들을 모아 논산 근교의 야산 비탈에 둥지를 틀었다. 아파서 누운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동냥을 해다가 나누어 먹였다. 쓰러져 죽은 사람이 있으면 힘을 모아 땅을 파고 무덤을 만들어 주면서 세상에 의지하지 않고 서로 날개를 비비대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살아온 지난 삼십여 년이라고 했다. 의학의 발달로 한센병도 다 치료가 됐다. 처절했던 과거를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하는 노인의 뒤로 마을 중심에 굳게 선 예배당의 십자가가 보였다. 그들의 중심에 들어와 있었던 건 주님이 틀림없었다.

"이제는 병도 다 완쾌되셨는데 가족을 찾아가보시지 그래요?"

내가 말했다. 가족 이야기를 하려니 문득 예전에 감명을 받았던 영화 벤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한센병에 걸려 로마의 변두리 절벽 동국에서 다른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있었다. 아들이 찾아갔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동굴 안 깊숙이 몸을 피했다. 피눈물이 나도록 보고 싶었지만 아들을 위해서였다. 아들은 동굴 안으로 들어와 어머니와 동생을 감싸 안았다.

"난 절대 아들을 찾아갈 수 없어요. 그건 아들 인생을 망치는 일입니다. 몸이 이렇게 된 이상 절대 그럴 수 없어요."

노인의 어조 속에는 처절한 사무침이 배어 있었다. 그가 응석같이 한마디 덧붙였다.

"젊어서 독한 약을 워낙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나이가 드니까 여기저기 쑤시지 않는 곳이 없어요. 보통 사람이라도 내 나이가 되면 몸이 아픈데, 그냥 편하게 죽었으면 해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게 한 순간이었다. 난 하나님께 기도하며 상상해봤다. 그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그곳으로 찾아오는 광경을.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고 아버지의 발을 씻겨 주는 광경을 말이다.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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