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자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10/27 [11:20]

나의 법률사무소 근처의 빌딩에 J씨 사무실이 있다. 육십 대 중반의 그는 숨은 부자다. 교회의 모임에서 우연히 그와 알게 됐다. 한번은 그에게 돈이 얼마쯤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충 남은 게 2천 억쯤 되나?”하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 사실은 말이죠, 재벌반열에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분수를 지키느라고 그걸 사양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원래 부자가 아니고 어느 날 돈 폭탄을 맞았다고 고백했다. 친해진 사이가 되자 어느 날 나는 그들 부부에게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저의 아버지는 평범한 은행원이었고 저도 대학을 나와 은행에 들어갔어요. 개발독재 시절이었죠. 그 시절은 차관이 들어오면 정치권에 줄을 대서 그 돈을 배정받는 사람이 벼락부자가 됐어요. 예를 들어 차관이 연 2퍼센트의 이자로 들어오는데 그 돈을 받아서 연 25퍼센트의 이자를 주는 은행에 가만히 넣고 있어도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거죠.
 
정치권이나 재경부에서 누구에게 대출해주라고 명령이 내려오면 그게 부자가 되는 도깨비 방망이였죠. 은행은 그 명령을 들을 수 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인사권이 꽉 잡혀 있었기 때문이죠. 어떤 때는 담보도 제대로 잡지 않고 돈을 대출해 줬죠. 그 돈을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나누어 먹는 겁니다. 그러다 기업이 망하면 국민들이 모두 세금으로 갚아준 거죠. 재벌기업들이 그렇게 했죠.”

그런 부자의 탄생이 있었다. 그가 얘기를 계속했다.
 
“은행원 생활도 여러 종류죠. 보통은 지점과 각 부서를 돌면서 임원이 되는 경우가 엘리트 코스고 모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죠. 그런데 제 경우는 생각이 조금 달랐어요. 한 업무만 전문적으로 깊이 파보자는 거였죠. 부동산 부서에만 있으면서 실무와 이론을 공부했어요. 은행 안에서는 부동산 박사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은행에 있다 보니까 각 재벌그룹의 부동산을 담보로 잡는 과정에서 그들이 어떻게 좋은 물건을 구입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더라구요. 또 고위관료나 권력기관 사람들이 이 땅을 사면 어떻겠느냐 저 땅을 사면 어떻겠느냐고 저에게 질문을 많이 하더라구요. 정보를 가까이 하는 그 사람들한테 오히려 많이 배우기도 했죠.”
 
오랫동안 실력을 축적해 왔다는 게 느껴졌다. 문제는 어떻게 기회가 왔느냐였다. 그가 계속했다.
 
“IMF금융위기가 닥치기 직전 이었어요. 한 친구가 저보고 맨 날 그렇게 살 거냐고 하면서 자기하고 사업을 한번 해보자고 그래요.
 
명예퇴직을 할 건가 고민할 때였죠. 건설회사에 동업자로 들어갔어요. 남들은 저 같이 왜소한 행원 출신이 건설업을 한다고 하면 전부다 웃었어요. 건설을 한다고 하면 막말로 건달 같은 기질이 있다고 사람들이 인식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갑자기 터진 IMF가 엉뚱하게 저에게 기회가 된 겁니다. 위기가 닥치니까 재벌들까지 노른자위 땅을 투매하는 거예요. 그리고 아파트와 상가를 짓다가 건설사들이 연쇄적으로 주저앉고 있었어요.
 
저는 그것들을 볼 눈이 되어 있었던 거죠. 좋은 물건들을 거의 줏다 싶이 했어요. 돈 폭탄을 맞는 것 같았어요. 현찰이 들어와 막 쌓이는 거예요. 그때는 은행이자율 자체가 30퍼센트를 넘었어요. 돈이 눈덩이 같이 불어났어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그의 부인이 끼어들었다.
 
“그때는 말이죠 운이 들어오니까 몇 백대 일의 경매에 참가해도 덜컥 낙찰이 되는 거예요. 몇 억 원은 어디 구석에 박혀 있어도 잊어버리고 모를 정도였다니까요.”
 
그들 부부도 자신들에게 찾아온 행운에 놀란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가 물었다.
 
“부자가 된 다음은 어떻게 변했는지 듣고 싶은데요.”
 
“파트너들은 처음에는 믿음이 깊은 사람들이었어요. 교회에도 잘 나갔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어느 순간 룸쌀롱을 집같이 드나들고 연예인들을 데리고 다니더라구요. 일류 탈랜트를 광고모델로 썼는데 우리 모두 처음에는 그런 탈랜트가 있었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순진했다니까요. 당시 경기도에 있는 아파트의 70퍼센트 정도는 우리 회사가 지은 거죠. 파트너 두 명이 저보고 우리도 삼성의 이건희를 능가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어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 반열에 오르는 게 눈 앞에 보일 때였으니까요.”
 
"여보 그 별장 얘기도 해드려"
 
옆에서 그의 부인이 끼어들었다.
 
“맞아 돈이 쏟아져 들어오니까 파트너들이 별장도 가지고 싶어하더라구요. 가평에 8만 평 땅을 사들여 별장을 지었어요. 그런데 돈이 많으니까 뜯어서 바꾸고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짓고 그런 사치를 하게 되더라구요. 그때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에 출마해야 한다는 소리도 있었습니다. 사업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손을 잡고 밑으로는 조직폭력의 건달들을 부려야 하는 현실 문제도 있었습니다.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용수권이나 인허가 문제를 둘러싸고 관료들을 매수해야 하는 게 사업현실이었어요. 그런 걸 파트너들이 해 왔는데 내가 재벌로 도약하기 위해 그걸 직접 해야 하느냐의 문제에 봉착한 거죠. 사업을 해도 저는 직접 관료들을 만나 접대한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사업의 성공은 악마와 손을 잡아야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가 그때 무릎 꿇고 하나님께 물어봤죠. 그랬더니 돈을 섬기지 말고 나를 섬기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사업재산을 분할해 달라고 해서 그 돈을 받아 가지고 헤어졌어요. 우리는 별장도 안 가지겠다고 파트너에게 말했죠. 집사람이 거기 가서 살지 않겠다는 겁니다. 저보고 졸장부라고 파트너들이 비아냥거리는 것 같았어요. 그 사람들 하고 헤어지고 우리 부부는 생활을 바꾸지 않았어요. 음식도 집도 계속 예전과 마찬가지였죠. 돈을 전부 은행에 예금했어요. 그래도 돈이 돈을 벌어주는 역할을 하더라구요.”
 
“재벌을 꿈꾸던 파트너들은 그 뒤로 어떻게 됐나요?”
 
“건설이라는 게 아무리 커도 끝까지 가면 결국 망하게 되어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다 분양이 잘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절제가 잘 되지 않는 겁니다. 도박판 같아요.
 
예를 들어 백 억을 벌었으면 조심하면서 일부만 투자해야 남는데 더 많이 벌려고 대출 받아 이백 억을 투자하고 그렇게 사업을 벌리는 겁니다. 결국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거죠. 사업을 어디 제 돈 가지고 하나요? 다 대출받아 하는 건데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거죠.”
 
“본인도 욕심을 부린 적이 없으세요?”
 
내가 물었다.
 
“저도 위험한 적이 있었어요.  LA의 비치를 따라 계속 서 있는 주유소들을 모두 유대인이 독점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걸 사고 싶었어요. 유대인과 흥정을 벌였죠. 유대인에게 30퍼센트 깎자고 우겼어요. 유대인은 10퍼센트 이상은 절대 안 된다는 겁니다. 당시 저의 계산은 부동산가격이 폭락할 경우 손실률을 그 정도로 잡고 그렇게 주장한 거죠.
 
마지막에 하나님한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내 주장을 계속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거래가 결렬됐죠. 그런데 그 다음에 미국에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고 부동산이 폭락했는데 제가 안사기를 천만다행이었어요.”
 
“사업을 할 때마다 하나님한테 물어보시나요?”
 
내가 물었다.
 
“그럼요, 돈을 가지고 있으면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기획서를 가지고 와요. 어디에 리조트를 지어라 어디에 호텔을 지어라 어떤 회사를 인수해라 그대로만 하면 단번에 일확천금을 할 수 있을 것 같죠. 거기에 현혹되면 눈에 콩깍지가 끼는 겁니다. 그래서 끌려들어가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한테 물으면 눈에 다른 게 끼는 일이 없죠. 저는 그렇게 해요.”
 
“부자가 되니까 어떤 게 좋아요?”
 
내가 옆에 있는 그의 부인에게 물었다.
 
“돈이 생겼다고 그걸로 보석을 산다거나 좋은 차나 옷을 입는 사치를 하면 모를까 그게 아니니까 특별히 즐겁거나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요. 부자라는 게 단지 숫자상으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우리 부부에게 다른 변화는 없어요. 예전에 남편이 은행원 생활을 할 때나 비슷하게 생활을 하니까 실감이 나지를 않아요. 그렇다고 별장이나 요트를 가지고 싶지도 않구요. 하나님이 관리하라고 준 돈이지 우리보고 잘 먹고 잘 쓰라고 한 돈 같지는 않아요.”
 
부인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 부부의 말에서는 전혀 위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이렇게 말했다.
 
“아니 저한테 꿈이 있어요. 이 세상에 교회 백 개를 세우고 죽을 거예요.”
 
지금 나는 그에게서 바둑을 배운다. 그는 옷을 입는 것도 식사도 간소하다. 함께 바둑을 둔 후에 근처 식당에 가서 두부찌개를 먹거나 짜장면을 먹곤 한다.
 
그는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토요일이면 서점 구석에 앉아 열심히 책을 읽고 가지고 간 수첩에 좋은 말들을 깨알같이 적어다 내게 자랑한다.
 
그 부부는 매일 새벽기도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의 부인은 성경 읽기가 삶이다. 좋은 부자다.〠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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