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독충에 물렸다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1/26 [11:01]
팔과 다리에 구멍이 뚫리면서 점점 상처가 깊어졌다. 현미경으로 조직검사 슬라이드를 보면서 피부과 교수가 물었다.
 
“세포 안에 충(蟲)이 가득히 보입니다. 그런데 정체불명입니다. 근래에 어디 갔다 오신 적 있습니까?”
 
“예 중동지역의 광야에 갔다 온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광야에 사는 독충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람을 물 때 자신이 숙주로 몸 안에 있던 균을 집어넣습니다. 그 균이 내장 쪽으로 가면 고비를 맞이하실 수 있습니다. 그동안 상처를 방치했으면 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이 엄습했다. 광야에 나갔던 대가였다. 어느 날 성경 속에서 갑자기 ‘광야’라는 단어가 생물처럼 튀어 올랐다. 예수가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그곳에는 신비스런 영적 기운이 아직 남아있을 것 같았다. 광야로 가는 길이 우연히 열렸다. 12년째 그 광야에서 기도한다는 한국인 수도사가 잠시 한국에 나왔다는 것이다. 그에게 찾아갔다. 백발에 부리부리한 눈길을 가진 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광야는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죠. 성령의 뜨거운 감동이 있어야만 가는 곳입니다. 독충도 있고 뜨거운 태양과 목마름이 있고 고난이 가득 있는 곳입니다. 관광지가 아닙니다.”
 
“목숨 걸고 가보겠습니다.”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해놓고도 이게 뭔 말인가 싶었다.
 
“광야 바닥에서 그대로 잠을 자야 합니다. 개인 텐트와 식량까지 준비해 오셔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 어떤 다른 존재가 나를 광야로 끌고 나갔다. 그런 마음이 들게 했고 수도사 목자와의 만남 터무니없이 목숨을 건다는 얘기는 모두 내가 한 게 아니었다. 끝없이 붉은 모래인 미디언 광야를 시편을 암송하면서 걸었다. 밤이면 보랏빛 하늘 가득히 별들이 영롱하고 바위산의 암벽이 밝아지면서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광야는 달빛바다였다. 광야의 수도사는 어둠에 젖은 모래 언덕위에서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 이 광야에서 40년을 떠돌았습니다. 우리도 광야 같은 인생길을 떠돌기도 합니다. 이 광야의 의미가 뭘까요? 고집을 꺾어 겸손하게 낮추어 놓으려는 거죠. 사람이 밥이 아니라 진리인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요.”
 
오봇 광야 깊숙이 들어갔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숙영지였다. 밤이면 드문드문 서 있는 싯딤 나무의 가지들이 달빛에 어른거렸다. 숙영지인 그곳의 밤공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소리가 아직도 떠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누런 회오리바람이 군데군데 피어오르는 모압 광야의 베셀에서였다.
 
허물어진 도피성이 실루엣같이 나타났다.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성에 들어가면 살 수 있었다. 전설보다 오래된 성안으로 들어갔다. 말라버린 우물과 무너져 내린 망루가 있었다. 괴괴한 느낌이었다. 무너진 돌무더기 위에서 마주 앉은 수도사가 말했다.
 
“이 도피성은 바로 예수고 우리들이 기댈 상징입니다.”
 
유대광야로 들어갔다. 오후 3시의 뜨거운 태양은 바늘 끝 같았다. 돌무더기와 푸석거리는 메마른 흙더미가 깔려있었다. 짐승의 똥들이 바짝 말라 뒹굴고 있었다. 엘리야가 기도하던 곳, 세례요한이 묵었던 곳을 찾았다. 수도사는 예수도 그 부근 어디에서 기도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인간의 몸을 가진 이상 물을 먹어야 하고 광야에서 샘이 있는 곳은 한정이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다리가 놓인 석회암동굴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수천 년 전부터 수도사들이 기도하던 곳 같았다. 가만히 앉아 기도했다. 신비한 침묵이 나를 감쌌다. 몸은 전원이 끊어진 것처럼 모든 기능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완벽한 무(無)가 나를 뒤덮었다. 그분과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광야를 걷다가 돌아온 수도사가 내게 말했다.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을 바로 이 광야에서 물리치셨습니다. 성령이 지금 내게 물어보라고 시키십니다. 세상적인 욕망을 모두 이 유대광야에 묻어버리고 갈 수 있겠습니까?”
 
“묻어 버리겠습니다.”
 
도대체 나 아닌 내가 대답들을 넙죽넙죽 잘도 하고 있었다. 무엇에 씌운 느낌이었다. 나 아닌 내가 나를 조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욕망을 진짜 없애겠습니까?”
 
“혼자는 못합니다. 성령이 도와주셔야죠.”
 
처음으로 솔직한 대답이 나왔다.
 
“당신 속에 있던 쓴 뿌리들이 이제 뽑혔습니다.”
 
수도사가 선언했다. 그런 광야순례에서 돌아 온지 두 달 후 몸속에서 내 살을 파먹고 들어가는 충(蟲)의 존재를 확인했다. 정체모를 더러운 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팔과 다리에 화산 분화구같이 궤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강이뼈가 허옇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큰 상처는 처음 봤다면서 의사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매일 새벽 어두운 예배당으로 들어가 따졌다.
 
“성령님 내 안에 계시기는 하는 겁니까? 말 좀 나누시죠.”
 
내면의 깊은 우물 속을 향해 나는 침묵으로 소리쳤다.
 
“무슨 말?”
 
어느 날 무전기의 미세한 반응처럼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내가 욥입니까?”
 
광야에 갔다 오니까 불행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네티즌들이 갑자기 벌떼같이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사회면에 내가 줄 소송을 당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었다. 나는 사회적 관심이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억울했다. 그보다 죽을까봐 더 겁이 났다. 누군가 내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인생 환갑까지 살았으면 본전은 챙긴 거 아닌가? 삶에 무슨 애착이 그렇게 많으신가?”
 
“죽는 건 맞습니다만 지금은 아닌데요.”
 
“오래 산다고 축복일까? 한겨울 찬바람이 흔들어 대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바짝 말라 부스러질 것 같은 쭉쟁이의 모습이 아름답던가? 낙엽도 윤기 있을 때 바람을 타고 내려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좋은 거라네. 난 내가 정한 시각에서 일분일초도 틀리지 않게 인간의 영혼을 데려가네. 누가 봉오리를 열어 꽃을 만발하게 하는가? 누가 껍질을 깨고 병아리를 나오게 하는가? 그날과 그 시간을 누가 결정짓는가?”
 
“그래도 전 아쉬움이 남습니다.”
 
“누구나 아쉬움은 남는 법 자네는 내가 준 인생무대의 배역을 해 왔네. 이제 됐네.”
 
“아니요 아직 너무 미흡합니다. 인생 5막인데 3막에서 내려가라고 하시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단역이나 엑스트라만 해 왔습니다. 좀 더 나은 역할을 맡고 싶었습니다.”
 
 “자네는 정말 의미를 모르나? 그건 죽으라는 거네.”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요나처럼 따져야 겠다.
  “한 가지 여쭐 게 있습니다. 시간을 내주실 수 있습니까?”
  “나 자신이 영원인데 시간쯤이야. 뭐?”
  “정 그러시면 죽겠습니다. 좋으십니까?”
  “진짠가?”
  “뭐 할 수 없죠.”
  “착하네, 자네가 죽어야 그 순간부터 내가 도와줄 수 있네.”
  며칠 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의사 박기봉이라고 합니다. 아마 기억 못하실 거예요. 30년 전 제가 군의관으로 있을 때 구속이 됐어요. 그때 저를 살려주셨어요. 병에 걸리셨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보답하려고 그 병에 관련된 외국의 논문들을 며칠간 찾아 읽었습니다. 리류마이너시스란 병이더라구요. 미국에서조차 또 다시 특별 면허증을 가진 의사들만 그 병에 관한 약을 처방할 수 있더라구요. 약이 워낙 독해서 의사라도 다시 라이센스를 따야 한답니다. 저도 그 독한 약재들을 보고 머리를 흔들었어요. 지역마다 사람마다 특성이 있기 때문에 치료방법도 정해진 게 없더군요.”
 
세계 최고 의료수준인 미국에 가도 막연하다는 얘기였다. 그가 덧붙였다.
 
“성모병원에서 해외 의료봉사를 가시는 조백기 교수가 그 병을 치료해 봤다는 증례발표를 했습니다. 찾아가 보시죠.”
 
나는 6개월째 천사 같은 노 의사에게 시술을 받고 있다. 스폰지 같이 부어오르던 가운에 있던 깊던 상처에서 살이 돋고 딱지가 생기고 있다.〠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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