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의 십자가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11/24 [11:56]
우연히 칠십 대 말의 소설가 이상민 씨를 소개받았다. 그는 편집기자 출신으로 추리소설을 써서 여러 개의 신문에 연재했었다. 기자들은 그를 김성종 씨와 함께 추리소설계의 대부라고 평가했다. 그의 경력은 화려했다. 큰 신문사 사장을 하기도 하고 스포츠신문들을 인수해 운영하다가 파산을 하고 철저히 바닥으로 떨어져 보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수시로 구속되고 얻어맞고 그런 세월을 살아왔다고 했다. 나는 그런 인생의 부침이 많았던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의 경험을 통해 위로를 받고 삶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그가 스마트 폰에 저장되어 있던 지방지의 기사 하나를 보여주었다. 5.16혁명 후 그가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됐다는 내용이었다.
 
“5.16혁명 무렵 제가 영남일보 기자로 있었어요. 그때 화폐개혁을 했는데 시장에서 소액권이 돌지 않아 상인들이 애를 먹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내용을 기사로 썼죠. 그랬더니 저를 바로 잡아서 군법회의에 회부시키는 거예요. 몸은 일반 교도소에 수감됐는데 매일같이 군 트럭이 와서 수갑이 채이고 포승에 묶인 저를 짐칸에 태워 군부대로 데리고 가는 거예요.
 
당시 군 검찰관이 그렇게 괴롭힐 수가 없어요. 넌 혁명위원회의 특별조치법을 위반했으니까 사형시키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가족들 접견도 시켜주지 않고 심지어 조사받을 때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에 있는 헌병보고 이 놈 다시 수갑 채우고 묶어 하면서 괴롭히는 거죠. 특별조치법에는 저를 사형시켜도 되게 규정이 되어 있었어요.”
 
그는 의인이었다. 그에게서 글쟁이의 용기를 배운다. 그는 고집을 꺾지 않은 강한 사람 같았다. 그 후에도 여러 번 그의 글이 트집을 잡혀 조사를 받고 혼이 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산의 중앙정보부 지하실에도 그 후 여러 번 끌려갔었는데 요령도 생기고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내가 사형가까이 갔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하는 생각이었죠.”
 
겁이 없어진 것이다. 기자이던 그는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스포츠지와 경제지를 창간했다가 망해서 다시 감옥에 가는 위기에 처했다. 당시의 상황을 그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경리담당이 사채를 썼는데 사장이던 나는 그 구체적인 빌리는 과정을 몰랐어요. 그런데 사채업자가 검찰 서기와 짜고 나를 사기범으로 꾸며 버린 거야.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전혀 들어주지 않아요.
 
감옥에 들어갔지. 언론사 사장이니까 죽이려고 열여섯 가지 죄명으로 기소를 하더라구. 그때 모든 걸 잃고 다시 빈털터리가 됐어요.”
 
인생 산맥을 걸으면서 여러 번 골짜기로 추락한 사람 같았다. 성경속의 욥 이상으로 고난의 세월을 산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작가생활은 어떻게 하셨어요?”
 
내가 물었다.
 
“감옥에 있을 때 고참들이 나보고 매일 재미있는 얘기를 하라고 명령을 하는 거예요. 좀 편하게 있으려면 그렇게 하는 수 밖에 없었지. 그래서 앉아서 이리저리 스토리를 꾸며보는 훈련을 했는데 그게 소설가가 되게 만들었죠.”
 
“인생에서 어떻게 괴로운 순간 순간을 넘기셨어요?”
 
그가 살아온 비결을 알고 싶었다.
 
“어느 순간 죽자고 체념을 하니까 마음이 고요해지더라구요. 그런 순간 풀려나게 됐죠.”
 
자신의 억울함과 고통을 그는 무덤덤하게 얘기했다. 그의 체념이란 단어에서 난 예수의 마지막 기도가 떠올랐다. 예수는 죽음의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렇지만 내 뜻대로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하시라고 그분께 맡겼다. 모든 걸 섭리에 맡길 때 그 분은 다가와 구해주지 않을까.〠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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