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뭉개면 투사가 되는 사회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2/29 [10:51]
다음카카오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영장을 거부한다고 했다. 용기는 있지만 한 면에만 치우친 미숙한 발언 같다. 사이버의 바다에는 오염물질 같은 범죄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피해 유가족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고 했다.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는 데모의 메카가 됐다. 법에 대한 불신을 넘어 공개적인 저항은 ‘핍박받는 투사’가 되기도 한다.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법 자체가 나빠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원인이 존재할까.
 
우선 법의 제조과정에 불량품도 많았다. 입법안에 서명을 하는 국회의원이 과연 얼마나 고뇌할까 의심한다. 다른 사람을 시켜 만든 법안에 서명 값까지 받고 하는 날치기 통과도 있었다. 집행과정은 어떨까. 법의 밥을 먹어온 필자는 추상적 당위보다 경험한 구체적 현실을 말하고 싶다.
 
한 기업인이 이런 호소를 한 적이 있다. 자백하지 않으면 수십 개의 협력업체를 압수수색하겠다는 협박이 왔다고. 그러면 사업은 망하게 되어 있었다. 영장은 그렇게 악용되기도 했다. 정부기관이 기업의 탈세액을 정보로 축적해 둔다. 그러다가 그 정보를 무기로 대상자를 굴복시키거나 파멸시킨다.
 
대상기업이 언론사일 경우는 진실을 침묵시킬 수도 있다. 법대로 하는 것 같지만 그건 폭력이다. 반면에 국민들은 법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형사사건의 재판장을 오래 했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이렇게 한탄했다.
 
자신이 유죄를 확신하고 다섯 건을 고소하면 그 중 한 건 정도만 기소가 된다는 것이다. 형사나 검사가 그보다 실력이 꼭 좋을 리는 없다. 그는 수사기관의 정의구현 확률은 20%라고 자조했다. 얼마 전 만난 한 단체의 대표는 담당수사검사의 직전 상관이었다가 개업한 변호사를 거액을 주고 고소대리인으로 선임했다고 했다. 그 단체에는 변호사도 여러 명 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해야 제대로 수사가 되고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민들의 고소 현실은 어떨까? 일선의 형사들 중에는 자신이 최종판결을 내버리는 경우가 많다. 검사도 마찬가지다. 법의 껍데기만 보고 피해자의 내면이나 진실에는 바위보다 둔감한 경우가 많다. 이런 오염된 환경에서 보통사람들의 법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이 돈을 내고 사려는 상품은 불법이나 탈법이었다. 목사도 교수도 인기 연예인들도 변호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짓말과 탈법이 대부분이었다.
 
법정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더미 같은 거짓말의 악취에 취한 법관들은 더러 튀어나오는 진실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게 내가 본 법세계의 음지쪽 광경이다. 법이란 정말 필요한 것일까.
 
한 일본 수필 속에서 살아있는 법을 깨달았다. 요양원에서 수족을 못 쓰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노인이 있었다. 기저귀를 제시간에 갈아 채우지 못해 분뇨에 절어있을 때가 많았다. 좋은 간병인을 만나면 깨끗하고 게으른 사람을 만나면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사람의 온정에 기대지 말고 하루에 몇 회 기저귀를 교환하라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 규정은 게으른 간병인이 와도 최소한의 쾌적한 삶을 보장했다. 바로 그거였다.
 
국회의원들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칠 필요가 없다. 의원 한 사람이 4년간 분투해서 화장실법 하나를 깔끔하게 만들어 놨다. 그랬더니 전국의 화장실이 세계 수준이 됐다. 길을 가다가 용변이 급해질 때 가까운 빌딩에 들어가 볼 일을 볼 수 있게 됐다. 자전거법 하나가 전국을 돌 수 있는 쾌적한 자전거도로를 보장한다. 유대인들의 율법은 형법뿐 아니라 가축보호규정이 있고 세탁하는 법, 똥 누는 법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율법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수천 년을 살아왔다. 자식들에게도 어려서부터 암송하게 하면서 종교적으로 승화시켰다. 다민족사회인 로마에서는 법이 절대였다. 여러 민족과 개인을 하나로 묶을 다발은 법이었다. 그들에게 법은 위반하지만 않으면 생명과 자유를 보장받는 보루였다. 법은 우리 모두 함께 잘 살자는 사회적 합의다.
 
국회의원들이 맑은 마음으로 좋은 법을 만들고 그 법이 넓은 논 곳곳에 물이 스며들 듯 공정하게 집행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사람들이 법을 지키면 행복해지는 사회라는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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