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 걸레질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8/29 [10:46]
세상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보내주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그런 친구들은 나이나 사회적 환경에 상관없이 서로 영이 통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 사람들은 친구이자 믿음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가구점을 하는 L장로다.
 
그는 아버지가 답십리에 개척한 작은 교회에서 대를 이어 장로였다. 독실한 교인인 그의 아버지는 죽기 전날까지도 항상 성경책을 펴들고 있었다고 한다. 성경을 보다가 무릎을 치면서 “바로 이 말씀이 이 뜻이었구나”하고 기뻐하더라는 것이다. 가구점을 하는 그는 중풍에 걸려 지금도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따금씩 연락을 할 뿐이다.
 
지나간 일기장을 들추다가 2006년 12월 15일 점심시간 중국음식점에서 그와 얘기를 나누던 기록을 발견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일기는 과거를 현재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온몸이 마비됐다가 어느 정도 풀려 거동이 가능할 때 내가 찾아갔던 것 같다. 그가 나를 데리고 가구점 뒤의 중국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내게 말한 이런 내용이 써 있었다.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성령이 내게 알려주는 게 있어요. 틈틈이 교회에 가서 청소를 하라는 계시가 마음에 와 닿는 거예요. 그래서 토요일 날 예배당에 가서 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았죠. 당장 여러 가지 반응이 나타났어요. 칭찬하는 사람도 있지만 장로가 뭘 청소까지 하느냐고 수근대더라구요. 일요일 설교준비를 하는 젊은 목사님은 내가 껄끄러워서 그런지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불편해하시더라구요.”
 
그는 사실상 그 작은 교회에서 가장 어른인 셈이었다. 나이도 그렇고 경제적으로 기여하는 것도 가장 큰 셈이다. 그가 계속했다.
 
“그러다 말이죠 이번에 중풍에 걸려 온 몸이 마비됐다가 일어나니까 다시 성령이 내게 명령을 하시는 거예요. 교회에 가서 청소를 하라고. 그래서 대걸레를 들고 예배당을 밀고 다녔죠. 청소를 하는데 깊은 감동이 오더라구요. 지난번 하고는 전혀 달라요. 그리고 그 감동이 다른 사람들한테도 전달되는 것 같아요. 시큰둥하던 신도들 반응도 달라졌어요.”
 
그가 전신이 마비되어 철 침대 위에 누워있는 걸 병문안을 가서 봤었다. 아마도 그의 가장 큰 소원은 주님이 몸을 회복시켜 주시면 예배당에 가서 청소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는 진정으로 감사하면서 걸레질을 했을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성경을 보면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잖아요? 진정한 믿음은 그런 섬김에 있는 것 같아요. 장로라고 해서 대접받으려고 하면 안 되죠.”
 
그는 진정한 신앙인이었다. 그리고 나의 믿음의 안내자이기도 했다. 그의 말과 행동이 내게 전염된 것 같았다. 한번은 다니는 동네 작은 교회에서 청소하는 날이라고 오라고 했다. 화장실 변기 앞에 무릎을 꿇고 손으로 닦아보겠다고 생각을 했다. 막상 교회에 가니까 화장실은 빛이 날 정도로 깨끗이 닦여 있었다.
 
“여기 화장실 누가 청소했죠?”
 
내가 한 집사에게 물어보았다.
 
“화장실요? 그거야 장로님들 몫이죠. 장로쯤 되야 화장실을 청소하는 특권을 가질 수 있지 다른 성도들은 못해요. 식당 탁자들이나 정리하세요.”
 
장로들이 가장 험한 일을 했다. 세상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세월호 침몰사건이 터지자 담당 안전행정부 장관에게 피해자들의 아픔을 한번 느껴보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 나라가 어떤 것 때문에 신음을 하는지 무엇을 아파하는지 대한민국이 갈구하는 게 뭔지 한번 대통령과 고민해 보라고 전했다.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라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는 사이다. 나는 요즈음 예배당청소에 능숙하다. 넓은 대걸레를 밀고 부지런히 다니면서 먼지를 한 곳으로 모은다. 그리고 진공청소기로 흡입하는 게 요령이다.〠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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