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만나게 하는 건 내 권한이야. 그런데 왜 마음대로 들어가려고 하는 거야?”
곧 싸움이라도 할 것 같은 거친 어조였다. 목소리를 들어보니까 공직에 있을 때 모시던 상관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분을 모시고 들어왔다. 아마도 그분은 다시는 내 사무실을 방문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사무장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자존심이 강하고 격정적인 사람을 쓴 나의 잘못이었다. 그는 나에게 잘했다. 그래서 그가 누구에게나 잘할 것으로 착각을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집 지키는 개처럼 남에게는 이빨을 드러내고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했다. 그를 달래서 내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측근에 의해 어떤 사람의 인상이 결정되는 경우가 있었다.
육군 대위 시절 전방사단의 법무참모로 갔을 때였다. 전임 참모였던 김 소령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참모장인 장 대령 관사로 간 적이 있어. 그런데 부인이란 여자가 다리를 쭉 뻗고 바나나를 먹다가 나를 쳐다보는데 자세를 고치지 않고 동네 개 보듯 하는 거야. 그 여자는 나보다 높은 남편 계급장밖에 의식하지 않는 거지. 정말 불쾌하더군”
전임 참모의 혐오하는 감정이 전염병처럼 내게 옮겨졌었다. 나는 그 후 연대장인 장 대령을 좋게 볼 수 없었다.
나이가 든 요즈음은 병원에 갈 일이 자주 생긴다. 깨끗한 시설에 의사와 간호사가 친절하다. 그런데도 주차관리인들이나 접수직원들이 딱딱하면 말없이 발길을 돌린다.
그 병원의 첫 인상이나 마지막은 주차관리인이나 직원들에게서 받았다. 접수직원이나 주차관리인이 경영진에게는 예의 바르게 잘할 게 틀림없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극진히 잘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게 잘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사람은 아닌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 일 년 정도 고용변호사 비슷하게 일한 적이 있다. 사무장은 그 사무실 대표변호사의 친척이었다. 대표에게는 충성을 하는 사무장이 나에게는 막 대하는 느낌이었다.
또 상관의 일거일동을 파악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운전기사가 거만을 부리는 걸 보기도 했다. 남의 집을 방문할 때 개가 사납게 짖으면 다시는 그 집을 가기 싫은 것같이 밑의 사람들이 사나우면 그 윗사람도 싫어졌다.
개는 자기 밥그릇을 챙겨주는 주인에게만 온순하고 충성을 다한다. 주인은 자기에게 꼬리치며 귀엽게 구는 개가 남에게는 무섭게 변한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어떤 조직이나 위에는 잘하면서 남에게는 사나운 개 같은 존재들이 있다.
그걸 달래려면 먼저 고깃덩어리를 던져 주어야 한다. 십여 년 전의 일이다.
대통령에게 억울한 사정을 청원할 게 있었다.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은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몸종 같은 측근 몇 사람만 상대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청원의 대부분은 민정비서실에서 커트하는 경우가 많았다. 청원의 글이라도 직접 전달하려면 문고리를 잡고 있는 그 측근을 통해야 한다고 했다.
한 주요 일간지 기자가 내게 이런 정보를 알려주었다. 대통령방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사람에게 돈을 주어야만 대통령에게 뜻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착수금을 먼저 주어야 하고 일이 잘되면 성공 사례금을 바쳐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 분노했다. 지도자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만 보면 안된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판세나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대통령 밑에는 어진 사람들이 모이기 어렵고 정치를 올바르게 펼치기 힘들다. 정치뿐 아니라 모든 조직은 그 조직을 해롭게 하는 사나운 개 같은 존재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내보내야 하지 않을까. 〠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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