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을 꿈꾸는 세상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2/27 [14:16]

 

이따금씩 만나는 대학동기 모임에서 금융회사 임원이었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이십 대 젊은 친구들이 몇 년간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빠졌어. 한 번 투자하면 세 배를 버니까 얼마나 신이나겠어? 은행이나 증권회사에서는 그들에게 투자액의 세 배를 빌려줬지.

 

물론 그 청년이나 가족이 제공하는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말이야. 갑자기 돈이 들어오니까 젊은이들이 골프장에 북적댔지. 매너도 없이 캐디를 대하고 그린에서 막 사진을 찍어 대고 말이야.

 

그들이 투자한 비트코인 회사가 벌어들인 수익금을 보면 수조 원이야. 코인 거래를 하려면 외환과 바꾸는 절차가 필요해. 금융기관은 높은 수수료를 먹으려고 젊은이들의 투기를 뒤에서 조장하는 주범이지.”​

 

젊은이들을 모두 대박꿈에 마취되게 하는 세상인 것 같다. 내 아들도 주식을 산 것 같다. 그의 말이 계속됐다.​

 

“그러다가 증권 가격이 떨어지니까 청년들이 하루아침에 파산을 하는 거야. 젊은 층의 파산이 의외로 심각해. 외환위기 때보다 내부적으로 더 병들어가고 있는지도 몰라. 그 빚더미에서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해. 정부에서 청년들 채무탕감을 말했다가 여론에 박살이 났잖아? 투기하고 돈을 막 쓴 놈들을 왜 보호하느냐고? 요즈음 골프장에 오는 젊은 고객 수가 떨어졌대. 당연한 거지. ”​

 

그 자리에는 조그만 편의점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가난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편의점을 해 왔어. 그런데 매일같이 로또 복권을 몇만 원어치씩 사가는 사람들이 있어. 거의 병적이야.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고 싶은 거지.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로또복권을 파는 나도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증권이나 복권을 사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일방적으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옥수동 산꼭대기 허름한 집에서 혼자 가난하게 살던 오십 대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매주 천 원짜리 복권 한 장을 꼭 산다고 내게 말했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일 주일치 희망을 산다고 했다. 천 원이면 일 주일 동안 작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고정 관념과 편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독도 적절한 양이면 약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만 증권열풍이 분 건 아니었다. 삼십여 년 전 내가 삼십 대 때도 주식은 사람들을 달아오르게 했다. 직장동료들도 수시로 모니터에 떠오르는 주가의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다.

 

나도 한 번 주식을 사 본 적이 있다. 여의도 증권회사 지점장을 하는 고교 동창을 찾아갔다. 그는 사흘만 지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특정회사 하나를 찍어 주어 그 회사의 주식을 샀다.

 

다음 날부터 계단을 내려가듯 그 회사의 주가가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그 주식이 쓰레기가 됐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좋은 교훈을 얻은 것 같았다.

 

아버지 나이 또래의 증권회사 회장과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그는 한국 증권계의 대부로 알려진 분이었다.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증권을 단 한 주도 사지 마라. 증권으로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거야.”​

 

그 말의 행간에는 여러 그림자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증권으로 큰 돈을 번 재벌가의 회장이 있었다.

 

고교 동기의 아버지였다. 그 회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

 

“돈이 있으면 증권을 사지 말고 그냥 보통예금으로 가지고 있어. 증권을 하면 결국에 가서는 돈을 잃어.

 

나는 증권으로 돈을 번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들어. 그런데 엄 변호사는 안돼. 무조건 하지 마.”​

 

노인회장은 아들 친구에게 뼈있는 충고를 해 주었다. 그 이후 평생을 증권이나 복권 그리고 부동산에 관심을 둔 적이 없다.

 

내게 떠오른 영상이 있다.

 

해변에 줄지어 떨어진 동전을 발견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동전을 하나하나 줏으면서 걸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소년은 햇빛에 반짝이는 파란 바다도 하얀 구름도 보지 못했다. 진짜 아름다운 보석을 놓친 것이다.

 

주가에 정신이 매몰되어 있으면 그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때 내가 얻은 화두가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오 년 후에도 이 일이 내게 정말 중요할까 하는 것이다. 통장 속의 숫자의 오르내림이 나의 영혼에 영양분이 되는 것일까.

 

영혼은 텅 빈 채 통장의 숫자만 본다면 바닷가에서 동전을 줍는 소년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반대로 오 년 전 오월이십 일 너는 뭘했지?하고 나 자신에게 물었을 때 백지상태이거나 돈만 따라갔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말고 각자의 앞에 주어진 자기의 길을 분명하게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주춤거리지 않게 마음을 다잡아 일용할 양식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잔을 기울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이상의 길을 사람에게 바라지 않을 것 같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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