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인생소설의 후반부를 모른다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10/31 [09:56]

 

다큐 화면 속에서 청춘들의 아우성과 절규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고시원에서 우리에 갇힌 가축같이 들어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컵밥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면서도 손에는 영어 단어장이 들려 있다.

 

오천 원으로 라면만 먹고 사흘을 버텨야 한다면서 돈에 목말라 있다. 한 여성 수험생은 이십 대가 가장 꽃 같은 좋은 시절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독서실에 묻혀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돈이 없어 고시원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화면이 바뀌면서 데뷰한지 삼 년이 된다는 여가수가 나왔다. 돈이 없어 앨범을 내지 못하고 노래할 무대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카트에 무거운 키보드와 스피커를 싣고 버스킹 공연을 위해 추운 거리로 나선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있는 몇 명의 남녀에게 다가가 관객이 되어달라고 한다.

 

꽤 적극적인 성격인 것 같다. 이윽고 네 명의 관객이 그녀 앞에 섰다. 그녀는 키보드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음악은 예술의 제단에 올려놓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것 같다.

 

또 다른 화면이 슬라이드같이 나오고 있다. 하얀 눈송이가 춤을 추며 내려오는 아파트 단지의 한쪽에서 이삿짐을 옮기는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면서 꿈은 연극배우다.

 

그는 틈이 나면 대학로의 소극장을 찾아가 소품을 정리하고 무대를 청소한다. 언젠가는 연극배우가 되기 위한 정지작업이라고 했다.

 

젊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그들은 현재는 뼈아프고 미래는 암담하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인생을 소설로 치면 전반부일 뿐이다. 마지막 결론을 모른다. 나는 어느새 인생이라는 소설을 마지막까지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가 됐다. 친구들이나 변호사를 하면서 수많은 다른 사람의 인생 소설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작가인 하나님은 소설 같은 인생에서 주인공들을 계속 궁지로 몰아넣는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해도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승진의 한 단계 한 단계가 높은 산봉우리다. 대부분 중간에 탈락한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쫓겨난다.

 

정상에 가도 그곳에 행복의 무지개는 없는 것 같다. 허무의 깃발만 꽂고 바로 하산한다.

 

변호사를 하면서 대중의 우상이 된 스타 가수들도 봤다. 무대 위의 화려함과는 달리 그들은 뒤에서 불안과 과로에 시달렸다. 낮에는 방송국 무대를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고 밤에도 나이트 클럽 무대에서 새벽을 맞았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삼각김밥과 라면으로 속을 채웠다. 앨범 백만 장이 팔리는 것이 정말 행복일까 의심스러웠다. 행복은 인기와 박수갈채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최고의 배우가 된 사람들도 허상이 많았다. 대중 앞에서는 멋진 가면을 쓰고 레드카펫을 밟지만 무대 뒤에서는 신문지를 깔고 앉아 자신의 연기 장면을 촬영할 때까지 한없이 인내하며 기다리는 일상이었다. 배역이 없으면 백수 신세라고 한탄했다.

 

행복은 합격하는 순간 뭔가 된 것 같은 감정을 가진 찰나 잠시 반짝인 불꽃이었다.

 

행복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봉제공장의 미싱 앞에서 노래부르며 행복해 하는 여공을 봤다. 그녀의 영혼에는 다른 존재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게 있으면 사람은 어떤 곳에 있든지 행복한 것 같다.

 

자동차 수리공을 하면서 시를 쓰면서 행복에 젖었던 소년을 본 적이 있다. 청소부를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본 적이 있다. 배달 노동을 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자기가 몰두할 예술을 가진 사람은 꿈이 있고 행복한 것 같았다.

 

자기에게 알맞는 일을 하고 거기에 몰두할 때 성공과 행복은 슬며시 다가오는 건 아닐까.

 

고교시절 학생회장을 하던 동기가 있었다. 리더쉽이 있는 그가 굵직한 정치인이 될 걸로 생각했다. 의외로 그는 공구를 만드는 중소기업을 경영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공구가 공구의 최고봉인 독일로 수출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사회가 어두웠던 시절 ‘아침 이슬’이란 노래를 작곡한 고교 선배가 있다. 그는 광산의 막장노동을 하고 김제평야에서 농사를 짓고 바다에 나가 고깃배를 탔다고 했다. 그리고 뮤지컬을 연출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자유하고 행복해 보였다. 인생의 연출자인 그분이 계속 각자 무대의 주인공인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는 것은 자신에게로 오라는 의미가 아닐까.

 

실패는 방향을 바꾸어 그의 초원으로 들어가게 하는 그분의 막대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두서없이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방향이 그쪽으로 갔다. 내 생각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