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피긴 박사의 호주 복음주의 기독교의 역사 (9)
 
번역 | 홍은희ㆍ정의경/크리스찬리뷰
제7장 균형잡힌 복음주의 

1959년 빌리그래함의 호주사역 (1)

현대 복음주의는 조지 화이트필드, 조나단 에드워드와 존 웨슬리를 통해 시작되었다. 이들의 1740년대 부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체험하였다. 부흥은 그리스도를 체험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20세기 복음전도자로서 가장 잘 알려져 있었던 빌리 그래함은 이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복음전도사역은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믿게 인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전체가 하나님을 깨닫고 국가가 복음의 가치로 변화되길 추구했다. 1959년 열린 빌리 그래함의 전도대회만큼 호주인들에게 기독교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만든 사건은 없었다. 전도대회는 호주에 가장 효과적인 복음전도를 이뤄냈다. 거의 모든 복음전도자들이 대회 뒤에 한마음이 되고, 반대는 아주 적은 비복음적 내용들에 불과했다. 여기서 말씀, 성령, 세상을 통합시킨 복음이 가장 잘 나타났다.

빌리 그래함은 자신의 전도대회로 인하여 일어났다고 부흥이 주장하는 것을 꺼려했다. 대회 이전에 그는 부흥을 놓고 사람들에게 기도하기를 종용했었다. 그는 대회의 진정한 결과는 30년이 지날 때까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명한 호주 장로교 목사 고든 파워는 전도대회 6개월 후 “부흥이 오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과거 비슷한 전도대회들에서는 죄의 각성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부흥이 있었던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에서 한 회심자는 ‘이와 같은 것을 전에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 두려웠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회심자는 “저는 잊을 수가 없어요. 빌리 그래함이 노아에 대해 설교할 때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다.’ 라는 말을 듣고 떨었습니다. 앞으로 나오라고 할 때 저는 단호하게 일어섰습니다. 전에는 절대 할 수 없었지요.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빌리는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을 반복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아주 깊이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것을요. 그것은 마치 갇혀진 상자 안에서 나오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자유로웠습니다. 저는 뛰고 싶었고 또 그렇게 했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이런 반응이 성령으로부터 오는 죄의 자각에 의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일대일 요원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감정을 자극하지 말고 각자가 결정하도록 인간적인 압박감 없이 (전도자)는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내재하고 있는 성령님으로 하여금 일 하시어 그들이 앞으로 나아와서 상담하고 기도하도록 초대하라.’

빌리 그래함은 교회 부흥신학의 최고봉이었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말대로 성령의 역사는 ‘눈물이라던지, 떨림, 신음소리, 울부짖음, 신체적 격동이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과 같은 사람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에 동의했다.

빌리 그래함을 반대하는 쪽은 그가 도리어 성령의 불을 끄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들은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는 거대하고도 능숙하게 군대같이 표준 운영방법에 근거하여 운영되고, 매우 남성위주며 12개의 모든 위원회 중 기도위원회만 여성 부대표가 있었고 팀은 기본적으로 사업에 관련되어 구성되었으며, 사람들과 더불어 어떻게 즐길 수 있는가를 알고 있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빌리 그래함은 기도에 우선권을 두고 부흥의 비결은 수많은 기도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역자들에게 호주대회가 ‘기독교 교회 역사상 가장 큰 개신교 모임이 될 것이며, 세계적인 그리스도 증거의 장이 될 것이다’ 라는 비전을 가지도록 촉구하였다. 멜본 크리켓운동장에 역사상 가장 많은 군중이 모였고 빌리 그래함이 이끈 최고의 모임이 되었다. 그는  “당신이 원하는 아무 때나 그리스도께 나아올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이 당신을 인도하실 때에 나아올 수 있습니다. 여기 수만 명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나아오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외쳤다. 부흥은 조직을 잘 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부흥의 정의

호주에서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가 부흥을 일으켰는가 아닌가?’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부흥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이 부흥을 일으키는가? 천국으로부터 쏟아지는 성령의 주권, 전도자들이 일상적으로 강조하는 영혼 강조, 경제위기와 사회적 자연 재해, 심리적 불안정, 젊은 혈기를 비롯한 긴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기독교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하심이다. 죄를 깨닫게 하고 회심하며 죄인을 소생하게 하는 성령의 강력한 능력으로 이루어졌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며 공동체가 함께 체험하는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예측할 수 없는 일하심을 기대함도 있다. 특별하게 서로 하나가 되어 기도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다. 언제나 교회가 활성화되고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회심한다. 사회 안에 죄악이 줄어들기도 한다,

이 정의는 부흥의 신학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부흥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믿는다. 칼빈주의자로서 나는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로 죄를 깨닫고 회심하며 죄인이 거듭난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사가로서 나는 부흥의 현상을 일반적으로 6가지 사람들의 행동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갈망해 하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며, 기도의 열기가 불타오르고, 교회가 갱신되고, 많은 죄인들이 회심하고, 사회적인 죄 습관에서 탈피한다. 이 정의는 역사가들이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영적이라는 반대가 있을 수 있다.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의 전례없는 성공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요인들이 있다. 최대의 조직, 뉴욕과 런던에 비하여 시드니와 멜본에서의 높은 개신교 교인 비율, 도시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인구 집중, 호주 개신교회 간의 비교적 적은 배타성, 전쟁 후 미국에 대한 호주의 우호적 분위기 등이다.

그러나 역사가들의 시선이 이 현실적 요인에 갇혀서 판단한다면 왜 호주에서만 이러한 부흥이 일어났느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1959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를 통한 부흥의 6가지 정의로 1959년 호주에서 일어났던 부흥 이외에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서 일어났던 현상들에 대하여 부흥 여부를 살펴 보도록 하겠다.

 
부흥의 기대

오랫동안 갈망해 왔고 기대했던 부흥이 호주에서 1950년대에 거세게 일어났다. 사실 그때까지는 전형적인 미국식 부흥캠페인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1956년 오랄 로버트는 멜본에 올 때 세계에서 가장 큰 텐트를 갖고 와 많은 사람들을 민망하게 했다. 이런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앞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50년대는 대학과 교회사이에서 복음 전도사역이 성공을 거두고 연례 성경컨벤션사역을 통해서도 전반적인 영적 온도가 올라가 있었다.

1950년대 시드니 무어신학칼리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종말론에 관심이 두었고, 두 번째 축복과 온전한 성화, 죄 없는 완전주의 같은 성결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빌리 그래함은 부흥에 대한 이러한 관점들을 많이 다루지는 않았다. 그는 기독교 믿음에 대해서 더욱 확고하고 건강하며 행복하고 외향적인 표현을 했다. 그가 갖고 있는 부흥의 기대는 종말론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주의도 아니라, 십자가 가운데 인간의 필요와 치유에 있었다. 빌리 그래함 팀은 호주대회가 다른 대회의 전례를 따르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팀의 사전 조사에서는 호주 캠페인은 소규모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 호주 인구는 퍼져있었고 국민 대부분은 스포츠광이자 부유하고, 복음전도자들을 거부감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대회 9일 동안 7,500명의 결신자가 최대 상한선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원자들의 수는 예상보다 8배나 많았다.

예산은 2,750파운드였지만 실제 지출은 21,818 파운드였다. 행사 감독 제리 베븐은 2,500~3,000명의 일대일 요원이 필요하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1월 말까지 시드니에서 8,000명이 등록했다고 케논 H.M 애로우스미스가 보고했다. 본부원은 20,000명의 결심자 자료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드니 한 곳에서만 요청한 3분의 1정도의 양이다. 대회가 시작하기 전 높은 예상을 했다면 결코 그것은 높은 것이 아니었다.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를 하도록 하며 부흥이 일어났다. 1958년 10월 27일 멜본 타운홀에서 빌리 그래함 대회가 공표되었다. 프로그램은 한 쪽짜리 그래함 사진이 담겨 있는 전기로 시작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맺어졌다. ‘목표는 이 시대에 부흥을 놓고 기도하는 것’. 빌리 그래함은 그의 독자들을 다음과 같이 격려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이 있습니다. 첫째로 당신이 아직 하지 않았다면 예수님께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결단하십시오. 교회에 등록해서 시간과 재능과 돈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긍정적으로 살기 시작하고 전심을 다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십시오. 주 안에서 당신의 믿음이 증거되게 하십시오. 당신의 교회 안에 당신의 사회와 국가 안에 부흥을 놓고 절실히 기도하십시오. 이사야 57장 15절을 읽고 믿으세요. 하나님이 새롭게 만드는 저자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전단지에는 ‘여기 멜본의 빌리 그래함을 들으라’ 라는 제목으로 빌리 그래함의 메시지가 뒷면에 실렸다. ‘우리는 부흥이 반드시 필요하다.’ 빌리 그래함이 말했다. 우리가 문명 속에서 인생을 한 발자국씩 걸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생활 방식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혹은 국제적으로나 거의 희망이 없다. 빌리 그래함이 국가적인 부흥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언론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어쨌든 1956년 무어 칼리지 교장이었던 케논 론이 호주의 부흥을 예언 했었음에도불구하고, 1959년 성공적인 대회에 모두 놀라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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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2/28 [12:53]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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