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어머니로서 사명 다할 것(상)

예장 통합 총회 ‘목회세습금지법’ 통과에 큰 역할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13/09/30 [11:31]
 
▲ 현재 새문안교회 정문 입구      © 새문안교회
 
새문안교회 이수영(67) 목사가 멜번을 거쳐 시드니를 방문했다. 이수영 목사는 ‘쓴소리 목사’이다.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에 거침이 없다. 참여정부 때는 정권을 향한 정확한 지적을 해서 눈총을 많이 받았다. 쓴소리 목사라면 호전적이고 다혈질인 인물이 아닐까.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놀라울 만큼 차분하고 논리적이었다. 기자의 질문 하나하나에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담담했지만 단호했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의 말은 흔들림이 없었다.
 
교회세습금지 즉각 시행 결의
 
“멜번에 계시는 원성희 장로님의 80세 생신을 맞이하여 왔어요. 축하선물만 보내려고 했는데 교회에서 제가 직접가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갑자기 왔어요. 원 장로님의 건강도 안 좋으시다 해서요.”

원성희(Dorothy Underwood) 선교사는 호주 선교사로 지난 60년 7월 한국으로 건너가 부산과 서울에서 교회음악을 가르치며 선교활동을 펼쳤다. 이후 장신대와 이화여대 등에서 교회음악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고 연세대 재단이사장이자 새문안교회 원일한(호레이스 언더우드. 새문안교회 창립자 언더우드 목사의 손자) 장로와 결혼했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조예가 있어 교회 음악 관련 책도 펴낸 원성희 선교사는 새문안교회가 한국교회음악교육원을 세우자 초대원장으로 일했다. 그는 원일한 장로가 2004년 1월 15일,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호주로 돌아와 현재 멜본에서 살고 있다.

호주 방문은 처음이라는 이 목사에게 원성희 선교사를 만난 소감을 물었다.

“저는 호주 선교사들에 대한 얘기를 이번에 와서 처음으로 들었는데 참 호주 선교사들은 미국 선교사들과 비교할 때 겸손하게 잘 섬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 선교사들은 우리를 깔보고 교만했던 구석이 좀 있었거든요. 참 좋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많은 헌신을 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서로 협력해 일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장통합은 9월 12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명성교회에서 열린 제98회 총회에서 교계 안팎의 관심을 모은 ‘담임목사 대물림 방지법’을 반대 870표, 찬성 81표로 통과시켰다. 뿐만 아니라 ‘세습방지법’ 시행을 당장 이번 제98회기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목회대물림 금지법안의 통과 여부를 두고 1시간 넘게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분위기를 교회세습금지 쪽으로 돌아서게 한 것은 이수영 목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목사는 “세습 문제는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고 있느냐 아니냐하는 문제이며 교회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라면서 “우리가 결의하면 다른 교단들이 다 따라오고 교회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호소했다.

- 이번 교회세습방지법 통과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우선 감사하고요. 사실 그날 초반 분위기는 완전히 세습 금지하면 안된다는 의견이 강하게 있었어요. 그 쪽은 미리 계획을 다 세우고 나온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전체적인 여론은 압도적으로 세습 금지해야 된다는 여론이 많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회에서의 토론 분위기는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아 걱정을 했었지요.

그리고 총회장님이 사회를 잘못하신 건 아닌데 찬성, 반대 5명씩 의견을 듣고 결정하기로 하고 찬성하는 사람은 파란 팻말을 반대하는 사람은 빨간 팻말을 들어 발언권을 얻도록 했어요.

그런데 빨간 팻말을 들어놓고 발언은 찬성하는 쪽으로 하고 이래서 결과적으로 7명은 찬성발언(세습금지하면 안 된다)을 하고 3명만 세습반대 의견을 하고는 투표에 들어가려고 그러잖아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발언권을 얻어 왜 세습을 금지해야 되는지 설명을 했지요. 절대적인 호응을 얻어 압도적으로 통과가 됐어요.

이번에 우리 교단에서 안했으면 사회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교단들이 총회를 추석 뒤로 미뤘어요. 우리는 추석 앞으로 당겼는데 이게 참 잘된 것 같아요. 우리가 먼저 결의를 하면 그것이 다른 교단 총회 때 영향을 줘서 세습 금지하는 교단들이 많아질 거라는 기대를 합니다.

조선일보 같은데서도 긍정적인 기사가 나고 사설까지 내놓고 좋은 반향을 사회로부터 얻은 것 같아요. 사회로부터 질타 받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의 개신교가 사회로부터 다시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대형교회 담임목사 세습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 이에 대한 목사님의 평소 생각은 어떠하셨습니까?

“사실 전에는 개신교를 볼 때 심각하게 생각을 안했죠. 그러나 자꾸 세습하는 교회들이 그것도 큰 교회들이 세습하는 일이 잦아져서 사회로부터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니까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리고 세습하는 이유가 내가 없으면 이렇게 크게 키워놓은 교회를 누가 감당하랴, 이 교회가 앞으로 어려워진다, 대개 이런 염려 때문이거든요.

또 아들한테 물려줘야 물러나서도 영향력을 행사해서 실제적인 권리행사를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에서 하거든요. 그건 신학적으로 볼 때 잘못된 거죠. 왜냐하면 개신교 3대 구호가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 아닙니까? 오직 은혜라는 것, 이것은 모든 것이 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지요.

그리고 내가 수고하고 내가 고생하고 내가 헌신해서 교회를 키웠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다하셨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다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깨끗이 물러나야죠. 왜 사람이 염려를 합니까?

그리고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인데 내 교회라는 의식이 강하니까 남 못들이겠다, 그런 생각이 발동하는게 아니겠어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고 이렇게 커진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 하셨다, 나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은혜 베푸셔서 이렇게 교회를 성장시켜주셨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이 온다고 하나님이 역사 안하시겠어요?

염려할 게 없는 거에요. 믿음의 부족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세습은 신학적으로도 맞지 않은 겁니다.”

- 교회세습금지법이 총회에서 통과된 직후 바로 이 법을 시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헌법개정위원회나 규칙부에 넘겨 그쪽에서 1년 안에 안을 만들어서 그 다음 해 총회 때 안을 상정하면 거기서 결의를 하여 그것을 각 노회에 보냅니다. 그리고 3분의 2 이상의 노회가 찬성해야 그 다음해 확정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보통 2~3년 걸려요. 그러면 그 사이에 서둘러 다 세습을 해버리면 소용이 없으니까 아예 쐐기를 박은 거지요. 당장 시행한다. 또 이에 대한 법 조항은 헌법개정위원회에서 만들어라. 이렇게 해서 우리교단은 사실상 총회결의와 함께 시행에 들어간 거지요.”
 
한기총은 해체되어야 한다
 
 -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 대한 논의는 없었는지요?

“저희한테 한기총 문제는 거의 지나간 문제였어요. 지난해에 한기총을 탈퇴하고 한국교회연합 쪽으로 참여하는 걸로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한기총 문제는 논의가 없었습니다.”

- 한기총을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재작년에 한기총 문제가 총회에서 나왔을 때 우리 노회에서 한기총을 탈퇴하고 한기총 해체를 촉구하는 결의를 하자는 일부 회원들의 의견이 있었어요. 그럴 때 저는 반대하기보다는 일단 유보하자는 의견을 취했어요. 왜냐하면 한기총을 세우신 분은 실질적으로 한경직 목사님이시거든요.

우리 교단의 어른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건데 그것도 서울노회거든요. 우리 손으로 그것도 우리 서울노회가 앞장서서 해체를 말할 수 있겠느냐, 물론 최대한도로 한기총이 제 역할을 바로 하도록 변화를 촉구하고 더 힘써보자, 이렇게 해서 탈퇴를 유보시키는 안을 저는 냈었어요.

그런데 일 년이 지나면서 한기총이 하는 것을 보고는 이제 더 이상 한기총은 자체 정화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판단한 거에요. 그래서 작년에 저도 해체하는 쪽으로 의견을 가졌었지요.

저는 한기총에 대해 비관적이에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기총은 자체 정화능력을 상실했고 다시 일어날 수 없어요. 그리고 한기총이 지금 이단들을 다 수용하고 이단들의 손에 놀아나게 된 상황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한기총은 해체되어야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기총에는 합동 측하고 군소교단들만 남아있는 거에요.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을 이미 상실했어요. 주요 교단들이 다 탈퇴했거든요. 그리고 일본복음주의연맹도 한기총과의 선교협약을 파기했어요. 이제 한기총은 우리 선교파트너가 아니라면서 한국에 있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우리 파트너가 돼 달라 이렇게 요구를 해왔어요.”

- 지금 한국교회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한기총이나 교단, 개교회의 내분은 물론 목회자 개인의 윤리적 문제로 신뢰도가 급락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지도자이자 선배로서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한국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이해가 건전하지 못하다, 이렇게 생각해요. 한국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가 뭐냐 결국 기복신앙에 빠졌다는 것이 제일 큰 것이고 기복신앙은 세속화하고도 연관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한국교회가 너무 교만해졌고 그리고 물질주의에 사로잡혔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된 원인이 누구에게 있느냐, 저는 교역자들에게 있다고 봐요. 지도자들이 잘못 가르쳤다. 그래서 교회가 건강해져야 되는데 교회가 건강해지려면 목사들이 건강해져야 되겠다는 거지요. 강단이 기복주의 설교하는 강단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순수하게 가르치고 복음을 순수하게 선포하는 그런 목사들로 바뀌어져야 되겠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선포하는 말씀과 자기의 언행, 삶이 일치해야 되겠다. 목사님이 너무 배불러지고 귀족화되고, 물론 다는 아니지만요. 물질주의에 빠지고 세속적인 욕심에 빠졌다. 그러니까 권력욕, 명예욕, 물질욕에 빠진 것이 큰 문제이고 한국교회가 새로워지고 거듭나려면 지도자, 즉 목사들이 세속적인 탐욕에서 벗어나 말씀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그 말씀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 목사의 가계는 개신교의 명문이다. 한국개신교 전래 초기부터 믿어온 집안이며, 3대째 목사인 집안이다. 할아버지 이기혁(1898-1984) 목사는 한경직 목사와 함께 해방 이후 개신교를 이끈 인물이며, 아버지 이동훈(1922-1974) 전 숙명여대 교수는 수백 곡의 찬송가와 합창곡을 남긴 작곡가겸 바이올리니스트다.

이 목사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대학에서 칼빈 신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로교신학대학교 후임 총장감으로 알려져 있던 그는 5대 김동익 목사가 소천한 지 2년 5개월 만인 2000년에 새문안교회에 부임했다.
 
장신대 후임 총장감에서 6대 담임목사로 부임
 
126년 역사를 가진 새문안교회는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로서 그 의미가 크다. 조직교회는 목사와 장로, 세례교인으로 구성된 교회라는 의미이다.

1887년에 출발한 새문안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는 언더우드 선교사다. 이 교회의 수석장로인 서원석 장로는 언더우드 목사와 함께 교회를 창립한 서상륜 씨의 증손자이다. 서원석 장로의 손자까지, 초대교인의 6대손이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교회 측의 청빙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과연 이런 교회를 맡을 적임자인지. 대학 쪽에서도 할 일이 많은데 과연 어느 일이 하나님의 뜻에 더 맞는 것인지요.

사실 제가 50세 되기 전에는 한번 목회를 생각했었어요. 계속 신학자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목회의 길을 갈 것인가. 왜냐하면 교회로 갈려면 적어도 20년은 목회를 해야 뭔가 목회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또 너무 나이 들어서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50세 전에는 진지하게 생각을 했었어요. 또 꽤 큰 교회에서 오라는 데가 몇 군데 있었어요. 그랬는데 결국 제가 목회의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담임목사직을 망설였던 이유 중의 하나는 대학 측의 만류였고, 또 다른 하나는 건강문제였다. 총장감인 인물이라 대학에서 붙잡고자 했고, 3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 ‘최소 5년은 지나야 안심할 수 있는’ 건강상태이기에 책임을 선뜻 맡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요청이 ‘워낙 간곡했다’는 것은 이 목사가 그만큼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새문안교회는 97년 4월 김동익 목사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2년여 동안 국내 유명 목사 수백 명을 번갈아 초빙해 설교를 들으면서 후임을 물색했다고 한다.

“제가 51살에 대장암 수술을 했어요. 1년간 치료하면서 학교에서 쉬도록 해주셨고요. 그때 목회는 접는 걸로 생각을 했었죠. 김동익 목사님이 저하고 비슷한 시기에 암을 앓았어요. 그래서 우리교단 총회에서 총대들이 다 기립해서 김동익 목사님하고 저를 위해 통성으로 기도를 했어요. 그랬는데 김동익 목사님은 돌아가시고 저는 낫어요.

그리고 수술을 한지 3년도 안 지났는데 새문안교회에서 정식으로 청빙이 온 거에요. 수석 장로님이 오셨는데 그날이 토요일이었어요. 장로님이 그래요. 아침 7시부터 장로님들이 다 모여서 기도회를 시작해서 지금도 하고 있다고요. 다 오려고 했는데 저한테 실례가 될 것 같아 혼자 대표로 왔다고 하면서 제안을 하세요. 그런데 제가 10여 가지 이유를 들어 사양을 했어요.

예를 들면 건강문제로 5년이 지나야 암이 완쾌 됐다는 판정을 받을 수 있는데 지금은 양심상 수락할 수 없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사양을 했는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숭실대 총장님이셨던 어윤배 장로님이 제가 거절하는 이유 하나하나에 조목조목 다 대답을 하시는데 아주 준비된 대답을 하시는 거에요. 제가 차마 거절을 그 자리에서 못하겠더라고요. 그때 마음이 움직였어요. 그럼 기도를 해보겠습니다. 두 달 동안을 정말 고민하면서 기도했어요.

내 뜻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이 나를 새롭게 쓰시려고 하는 부르심인데 내가 그걸 모르고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에요. 그러면서 신학대학 교수로서 제 사역을 마치는 것과 새문안교회라고 하는 의미있는, 또 상당한 능력을 가졌을 교회와 함께 사역하는 것이 한국교회를 위해서 더 의미있는 사역을 할 수 있지 않을까를 가지고 저울질을 하게 됐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 뜻이라면 순종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훤칠한 키에 느릿하면서도 또렷한 설교 어투까지 김동익 목사를 닮았다는 점도 새문안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고 한다.

이수영 목사는 “새문안교회는 개신교 중에서 제일 오래된 역사의 교회이며, 한국 전체를 생각하는 어머니 교회로서 한국교회에 모델을 제시하는 교회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모범적이고 한국교회의 좋은 방향을 제시하는 ‘어머니교회’로서 많은 일을 하기보단 건강한 신앙인을 만드는 것에 목표로 둔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보통 목회, 기본을 잘하자는 철학을 주장한다.

“제가 장신대에서 교수하다가 새문안교회로 목회하러 오니까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을 하여 주로 묻는 게 무슨 목회를 하겠느냐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일관되게 대답을 한 것이 ‘보통 목회’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어리둥절해 하더라고요. 아무리 봐도 보통 목사 같지는 않은데 보통 목회를 하겠다고 하니까 보통 목회가 뭐냐고 물어요. 그래서 우선 목사가 보통 목사가 되려는 거다. 그랬더니 보통 목사가 뭐냐. 제가 세 가지를 얘기했어요.

첫째, 정직하고,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 둘째, 욕심이 없고, 목회 의욕이 있는 건 좋지만 개인적인 욕심이 거기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세 번째는 겸손해야 한다. 목사들이 정직하지 않는 때가 많고 목사들이 명분은 그럴듯하게 걸지만 자기 사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할 때가 많고 그리고 좀 성공하는 것 같고 교인이 늘어가는 것 같으면 금방 목이 굳어지고 교만해지고, 이게 한국교회를 망치는 주원인입니다.

그래서 그것 세 가지만 잘 지켜도 일단 목회는 성공한 거다. 교인이 늘어나지 않아도 목회는 성공한 거다. 그 외에 교회가 커지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런데 보통 목사가 되려고 생각하지 않고 다 슈퍼스타 목사가 되려고 하니까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거다. 이것이 변함없는 제 개인적인 소신이고 목회의 기본 방향은 건강한 교회, 건강한 신앙인 만드는 것입니다. 제 목회 비전이지요.”  

▲ 멜본에서 열린 호주 선교사 연합 팔순 잔치에서 이수영 목사가 인사하고 있다.(왼쪽)     © 크리스찬리뷰

또 이 목사는 민주적인 목회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민주적인 목회란 목사 혼자 다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회원들, 제직회원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 모든 결정을 민주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담임목사 한마디로 모든 게 움직여지는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반드시 모든 일들은 위임된 것 외엔 모두 당회를 거쳐서 논의되고 결의되고 집행된다.

“당회운영은 원칙대로 한 달에 한 번 매주 마지막 주일이 지난 화요일 저녁에 합니다. 각 부서에서 올라온 회의 자료가 평균 100페이지 이상이 올라옵니다. 차례차례 보고받고 청원사항을 처리하고 할 때 담임목사는 기본적으로 사회를 합니다.

당회원들 개인의견을 개진하도록 하고 마지막에 항상 표결로 결정을 하죠. 이의가 있을 때 그리고 중요한 안건에 대해서는 제가 방향을 제시합니다. 또 다 듣고 나서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면 장로님들이 다 따라와요. 당회할 때는 치열하게 논쟁도 하지만 표결에서 일단 결정이 되면 한 표 차이라도 다 승복해요.

이렇게 절차를 중요시 여겨요. 그래서 민주적이라고 하나 봐요. 빨리 끝나야 3시간 이상 걸려요.”〠 <다음호 계속>
 
글/김명동ㅣ 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ㅣ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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