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라

강승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10/28 [10:58]
예수님은 참 자유의 ‘기원자’이시다. 인간은 질병의 노예요, 죄의 노예요, 율법의 노예요, 사망의 노예로 산다. 그래서 예수님은 질병을 치유하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며 공적 생애를 보내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에게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할 것을 가르치시고,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선물해 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자유할 수 있고 자유인으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는 그리스도인이 누릴 특권이요,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자유함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숨막힌 갈등과 경쟁의 환경에 얽매여 산다. 왜냐하면 물질이나 사람, 그리고 환경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 물질에 매여 있어서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우리는 물질이 많아지면 자유인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살아보면, 돈이 많아질수록 자유할 것 같은데 대부분 욕심의 노예가 되어서 산다. 돈을 많이 벌수록 더 벌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질이 주는 편리함 때문에 그 물질의 욕심은 절제되지 못하고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서 인간 관계가 깨어지고, 다툼과 분쟁이 생기고, 무서운 살인을 불러 오기도 한다.

또한, 돈이 많으면 자유할 것 같은데 염려의 노예가 된다. 가진 재물이 많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을 누가 훔쳐갈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질이 많으면 우리가 자유로울 것 같지만, 사실 욕심의 노예, 염려의 노예로 살게 된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대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가난하면 누구나 ‘시기심’의 노예가 된다. 나보다 친구가 좋은 집을 먼저 사면 축하한다고 말은 하지만 질투가 생긴다. 또한 가난하면 원망의 노예가 된다.
가난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학창시절에 집안이 가난해서 자신을 공부 안 시킨 부모가 원망스러워진다. 돈을 만족할 만큼 벌어오지 못하는 남편을 볼 때 갑자기 불평이 생긴다. 아내들은 집에서 아이들 키우고 가사일만 하는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이런 삶이 반복되고 기도응답이 잘 안되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까지 원망스러워진다. 이처럼 물질이 없으면 자유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원망의 노예로 살기가 쉽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을까?

먼저, ‘자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면 이미 그 사람과 환경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용서하고 자유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먼저 있어야 자유인으로 살 수 있다.

둘째로, 나를 억누르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염려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실행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이때 우리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변화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자유할 수 있다. 노예는 자신의 의지가 약하기에 무력한 상태에서 환경과 사람의 지배를 쉽게 받지만, 자유인은 환경을 뚫고 개척해 나가며 돌파한다.

우리 인생에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외부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환경이 있다. 그러나 내가 바꿀 수 있는 환경이 있다. 바로 내 가정과 내 일터와 ‘나 자신’이다.

특히 내가 내 자신을 변화시킬 때 주위 사람이 변하고 환경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은 염려, 근심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기뻐하며 즐기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도 염려, 불평하기보다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진정한 자유자가 되어 바울처럼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하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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