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로 하루를 시작하는 헤브론 사람들
현지인 의사들 자발적 참여... 환자들 ‘비전’의 삶으로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헤브론병원은 새벽 2시경부터 몰려드는 환자들과 새벽예배와 큐티로 시작한다.     ©크리스찬리뷰
 
숙소동 예배실에서 진행된 새벽기도회.  5시 15분쯤이 되자 고된 일과 속에서도 기상한 헤브론 가족들이 하나 둘 씩 예배실로 들어온다. 성경만 든 채 편안한 복장들이다. 모두 슬리퍼를 신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일과 시간에도 슬리퍼를 신는다.
 
밖에서 도란도란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른 새벽부터 와서 병원 문이 열릴 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다. 3시간째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도 있다. 아직 병원 문을 열려면 몇 시간이 더 남았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한다. 열심히 기도해야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고개를 숙인다.
 
문선연 목사가 인도하는 새벽기도회는 찬송과 말씀, 기도의 순서로 진행한다. 사도행전 2장 6절에서 11절까지를 본문으로 ‘성도의 꿈’이란 주제로 말씀을 전한다.
 
30분간의 설교를 마친 후, 기도하는 시간. 교회의 사역을 위해, 선교사들과 그 자녀들을 위해, 헤브론병원을 위해 기도한다.
 
새벽예배를 마친 시간은 6시 20분쯤. 헤브론병원은 그렇게 밝아오고 있었다.
 
▲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앞에서 조봉기 목사의 반주에 맞춰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김우정 원장.     ©크리스찬리뷰
 
헤브론병원의 좋은 소문
 
피곤감은 어느 새 물러가고 마음과 영혼은 한껏 뿌듯한 기쁨과 든든함으로 바뀌어 있다. 식당은 이미 아침식사 준비로 한창이다. 식사 지휘는 김우정 원장의 사모 박정희 (63)선교사다. 박 선교사는 시장에 나가 직접 반찬거리들을 구입하여, 현지인 주방사 뚜잇, 그리고 준띠어와 함께 정성스런 식사를 만든다. 숙소동에 거주하고 있는 선교사 가족들에게는 점심만 제공된다. 의료선교사들 생활은 모두 각자가 해결해야 한다. 집세까지 내야하는, 그러니까 모두가 자비량 선교사들이다.
 
일시 방문자에게는 아침, 점심, 저녁까지 제공해 준다. 물론 숙박비며 식사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대부분 돌아갈 때 헌금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단다.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아침식사 메뉴는 토스트와 딸기 잼, 그리고 우유와 달걀 프라이였다. 디저트로 망고가 나왔다.
 
7시쯤. 갑자기 밖에서 환호성이 들린다. 나가있던 권 발행인이 빨리 와보란다. 앞에서 부부인 듯한, 두 사람이 대기소 마당에서 찬양을 인도한다. 따라 부르면서 파안대소하는 대기 환자들. 병원 문이 열리기 전 무료함도 달래주고 복음도 전하는 자원봉사자 조봉기(65 캄보디아 장로교신학교 학장) 목사와 아내 박귀흠(60) 사모다.
 
조 선교사는 캄보디아어로 복음을 전하는데 모여 있는 환자들과 어찌나 쿵 짝이 잘 맞는지 ‘쿵’하면 ‘짝’한다.
 
“쁘레아예수 쓰럴란 쁘러떼 캄푸치아!” (예수님은 캄보디아를 사랑하십니다)
 
“아멘?”
 
“아멘!
 
“쁘레아예수 쓰럴란 네악!”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아멘?”
 
“아멘!”
 
조 선교사의 얼굴은 뭐랄까, 좋아서 죽겠다는, 그런 얼굴이다. 엄숙하고 장엄하고 회색빛 베일에 싸인 목사의 뉘앙스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함박 벌어지는 입매며 잔주름진 눈은 그러니까 속세로 말하면 복권이 당첨된 얼굴처럼 밝다.
 
바로 그때 김우정 원장이 지나가자 조 목사는 김 원장을 불러 세워놓고 ‘좋으신 하나님’ 찬양을 부탁한다. 모여 있던 환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김 원장을 아는 듯 했다. 김 원장은 합장으로 인사를 하더니 망설임도 없이 ‘God is so good, God is so good!’를 부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또다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모두들 영어로 찬양을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찬양가사를 다 아는 듯, 한꺼번에 찬양을 따라 부르면서 대기소 마당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김 원장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읽혔다.
 
세상에! 환자들이 그렇게 하나가 되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 그렇게 김 원장의 찬양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주는 것에 기자는 큰 감동을 받았다. 아아! 그리고 그 열렬한 박수 소리. 상대방을 아껴주고 저희들에게 인술을 베풀어주는 어른에 대하여 그토록 지극하게 존경을 나타내주는 그 자세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작은 키와 왜소한 몸짓, 오른쪽 어깨, 아니 허리까지 약간 굽은, 약간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김 원장은 모여 있는 환자들을 향하여 “God bless you!"를 조용히 기원했다. 평범은 비범에서 온다고 했던가. 너무도 평범하기에 그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하는 천박한 어리석음을 김우정 원장 앞에서 기자는 되새겨야만 했다.
 
김 원장은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한 접대와 환자들의 진료, 상담, 큐티 인도 등으로 쉴 새 없이 복도를 오가며 그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 신앙을 전파해 주고 있었다.
 
캄보디아는 높은 문맹률과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나라. 의료, 교통, 교육, 주거 등 전체적인 사회 인프라 자원이 낙후된 지역으로 의료혜택 접근이 어렵고 이에 대한 도움이 절실한 곳이다.
 
그런데 세상에! 마주치면 활짝 웃는 얼굴의 반가운 인사. 눈이 마주치는 환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합장을 하며 웃어준다. 어린아이같이 천진한 웃음이다. 사람을 향해 웃어주는 것, 이보다 더 큰 기도가 또 있을까.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런 이러한 장면이 왜 그렇게 감격스럽던지.
 
조봉기 선교사는 “매주 월요일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헤브론병원 전도는 제 사역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전국에서 온 수백 명의 어른들, 이 나라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대상들과의 만남의 장이다. 한 주간의 시작을 ‘힘과 능력’이 넘치는 예배로 시작하니 신학교에서의 생활 또한 필요한 능력을 부어주신다”고 말한다.
 
조 선교사는 이어 “한국교회가 더욱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보내는 교회로 나아가 달라”며 “세속화의 거대한 물결 가운데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헌신된 사람들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조 선교사는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그것이 하늘나라를 확장하는 일이라면 두려울 게 없다는 든든함을 보여주었다.
 
▲ 큐티로 하루의 진료를 시작하는 헤브론병원 의료진들.     © 크리스찬리뷰

처음 사랑을 기억하자
 
헤브론 가족들은 큐티에 참석하는 것부터 진료의 시작으로 삼는다. 빡빡한 일정에 큐티는 굉장한 헌신을 필요로 한다. 의료진들에겐 쉼 없이 수술과 진료를 수행하는 고된 작업장이다. 그러기에 영적충전은 필수적인가 보다.
 
사실 많은 선교병원들이 초기에는 선교병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의료선교기관으로서 많은 업적들을 남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설립 목적이 점차 불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결국은 병원이 영리사업으로 전락한다거나 문을 닫는 선교병원이 속출하고 있다.
 
연세의료원도 1885년 세워질 당시부터 의료선교병원으로 출발한 곳이다. 미국 선교사인 알렌, 헤론, 에비슨을 거치면서 의료원은 점차 선교병원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그 설립목적이 점차 불분명해지면서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김우정 원장은 큐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일의 중심에 말씀이 놓여져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말씀 읽기와 묵상을 통해 여기까지 왔듯이 헤브론병원의 사역도 큐티를 통해 계속적으로 전개돼 나가야함을 그는 믿고 있었다.
 
헤브론병원 가족들의 한결같은 기도제목이 있다. 그것은 헤브론병원의 비전이기도하다. 즉 △캄보디아 의료인 리더 양육(간호대학, 의과대학) △특성화 병원 개설(암 센터 등) △현지인에게 병원 이양 △라오스와 미얀마로 헤브론선교병원 확대 등이다.
 
오전 7시 30분. 큐티는 한국인 선교사들과 현지인 의사 그리고 간호사들 그룹으로 나눠 진행한다. 한국인 선교사들은 김우정 원장이 직접 인도하고 현지인 의사들은 한국인 의료선교사들이 돌아가며 인도한다.
 
현지인 의사들이 모여 있는 방을 찾아간다. 심콘, 삐셋, 킴타, 소파이, 삐세이, 유댓, 담롱, 소말리, 위스나 등이 참석했다. 오늘 인도자는 정금모(43. 소화기 내과의) 선교사다. 정 선교사는 지난해 7월 아내 반지현(39) 선교사와 함께 진형(12) 진성(8) 진하(3)를 데리고 1년 동안의 단기의료사역자로 헤브론병원에 왔다.
 
정 선교사 부부는 장기 사역 선교사들을 돕고, 내과 진료 파트를 담당해 오면서 현지인 의료인, 의대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정 선교사는 “8살 때 화상을 입고, 예수병원에서 혼수상태로 치료받았다. 당시 미국인 의료선교사를 보고 ‘나도 저 사람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깨닫고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 가운데 행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정 선교사 부부는 돌아오는 7월 예수병원으로 돌아간다. 헤브론병원은 2011년 2월 예수병원과 의료지식, 의료기술 및 인적자원의 교류, 의료봉사활동들의 협력을 추구하는 협약을 맺고 매년 인턴 및 전공의들을 지속적으로 보내 선교협력을 하고 있다.
 
기자가 물었다.
 
“정 선교사님, 그러니까 8살 때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던 바로 그 병원을 지금 섬기고 계시는 거네요.”
 
“네”
 
정 선교사가 처음으로 유쾌하게 하하 웃으니 기자도 따라 웃었다.
 
정 선교사는 “열악한 위생 상태로 인해 감염성 질환이 많을 뿐 아니라 치료 가능한 질환이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불편을 감수하고 그냥 지낼 수밖에 없는 이곳의 현실이 안타깝다”며 “하지만 우리가 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줄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큐티는 찬송과 기도, 성경읽기와 묵상, 적용하기 순서로 진행한다. 참석자들은 여기에서 그분께 모든 문제를 내려놓고, 그분의 잔잔한 음성을 듣는다.
 
큐티를 마친 시간은 7시 50분쯤. 잠시 입원한 환자들의 상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바로 회진에 들어간다. 현재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은 14명. 정 선교사는 현지인 의사들을 대동하고 206호 일반병실부터 회진을 한다.
 
▲ 정금모 선교사 가족     © 크리스찬리뷰

입원실에 흐르는 긴장
 
일반병실에는 6명의 환자들이 입원해 있다. 오늘 오전 위내시경을 한다는 폰툴(55.남) 씨는 의료진들이 도착하자 한줄기 희망을 보았는지 엷은 미소로 의료진을 주시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손을 내밀며 친금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환자들은 현지인 콩픈 전도사가 기도하기 시작하자 두 손을 모으고 기도에 순순히 응한다.
 
심장병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는 205호실. 어린이 3명과 세앙렌(30.여) 씨가 심장수술을 받고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새근새근 잠이든 아이도 있고, 조그만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가 있다. 21개월 된 남자아이 셍홍이다. 이 세상에 나와 보니 얼마나 기가 막힐까. 너희들이 이렇게 생긴 건 하나도 너희들 잘못이 아닌데. 선물로 가져간 코알라를 건넨다.
 
헤브론병원은 수술실 3개와 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입원실 등 선교병원 중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다. 현재 연 5만여 명의 캄보디아인들이 찾아 진료를 받고 있다. 수술환자 역시 백내장 수술을 받은 120명을 포함해 연간 1천여 명에 이른다. 한국으로 데려가 한국병원에 의탁해 수술한 캄보디아 심장병 어린이도 100명을 넘어섰다.
 
2014년 8월에는 심장센터를 개설해 지금까지 총 35명의 심장병 환자들이 이곳에서 수술을 받아 새 생명을 얻었다.
 
중환자가 입원해 있는 201호 204호 208호실을 차례대로 회진한다. 201호실에 있는 멘시헹(21.여). 결혼한 주부로 잃어버릴 뻔 했던 새 생명을 되찾았다. 분당 서울대병원 의료진 덕분이다.
 
멘시헹은 심장주위에 물이 차는 증상으로 위험한 고비를 몇 차례 겪었다. CT를 찍자 가슴에 종양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심장과 폐에 물이 차서 몇 개월 버티기 어려운 상황. 수술이 시작됐다. 멘시헹의 남편은 수술실 앞에서 마음 졸이며, 초조하게 수술결과를 기다렸다. 보호자 대기실 벽에 걸린 시계 초침이 그렇게 느리게 간다고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통스러울 만큼 오랜 기다림 속에 마침내 수술실 문이 열렸다. 이동침대에 실린,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내의 편히 잠든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술이 성공했다는 의료진의 말 한마디에 남편은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의료진들은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204호실로 들어섰다. 정 선교사가 차브릿(19.남)을 기자에게 소개하며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가슴 생식세포암으로 마지막치료 중인데 힘들 것 같다고 한다. 차브릿은 헤브론병원에서 인턴 실습을 받고 있는 담롱의 동생이다. 차브릿의 꿈은 선생님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으로 수술을 받기 위해 떠났지만 암이 너무 커져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되돌아왔다.
 
이곳에서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구토가 더욱 심해졌으며 탈모가 빠른 상태로 진행됐다. 손과 발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헤브론 가족들의 기도가 계속됐지만 죽음의 문턱에 이른 차브릿은 고통에 지쳐 잠자는 시간이 많아졌다.
 
차브릿을 바라본다. 콧등이 시큰하면서 가슴이 떨렸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울었을까’
 
차브릿 어머니의 초조한 눈빛은 기자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차브릿의 손을 잡았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길은 숨겨져 있고, 하시는 일은 가장 놀랍고 또 주님께서는 지으신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줄 압니다. 주님의 형상대로 아름답게 지음 받은 차브릿 형제가 아픔과 괴로움 속에서 신음하고 있사오니 도와주옵소서. 주님의 능력으로 고쳐주시길 원합니다.
 
투병이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능력의 하나님, 어린 생명입니다. 헤브론 가족들의 눈물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치료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사랑의 마음을 보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차브릿을 돌보는 가족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이 고통을 통해서 사랑을 깨달아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음이 아프다가 기자는 질문을 했다.
 
하나님 대체 왜 우리를 만드셨습니까. 내가 생각해 봤는데요, 하나님이 우리를 죽게 하는 것, 병들게 하는 것, 그것까지도 다 이해할 수 있다 쳐도, 하나님 뭐 하러 우리를 만드셨나요. 하나님이 혼자 이 세상 만드시고 땅과 하늘과 바다와 짐승까지 지으시고 그냥 거기서 보기 좋았다, 하고 마시지, 뭐 하러 우리를 만들어서 하나님도 우리도 이 고생인가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처럼 대답이 없으시고, 기자는 그 후 병실을 떠날 때까지 끝끝내 그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 헤브론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 크리스찬리뷰

집에 못가요, 오늘 꼭 진료해 주세요!
 
한편, 대기소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환자들의 진료도 시작됐다. 진료는 우선, 외래진료실로 안내되어 환자들의 아픈 부위를 검사한다. 여기서 대부분 투약치료냐, 수술이냐를 결정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뾰족한 해결도 받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100km 이상 떨어진 마을에서 왔다는 홍마엣(47. 여)씨는 하루 일정이 마쳐질 5시경에도 순서를 기다리면서 “오늘 진료를 받지 못하면 내일 오기는 힘들다”며 “꼭 진료를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빈부 격차가 심한 캄보디아에서 서민들이 무료진료를 받는 것은 평생에 흔하지 않은 일이기에 헤브론병원은 그 자체로 현지들에겐 ‘좋은 소식’ 일수밖에 없다.
 
의료진들은 진료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말씀을 전하고 기도를 하며 전도한다. 심장 수술을 해야 하는 등 특별한 케이스의 환자에게는 개별 상담을 하고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병이 더 중한 경우에는 집을 일일이 심방해 처한 상황을 살피며 기도하고 말씀을 전한다. 한 사람 한 사람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고 육체뿐 아니라 마음의 병이 든 사람도 많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의사와 환자’로만이 아닌 인격과 인격이 깊이 만나 사랑하고 섬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12시. 오전 진료를 마무리하고 전 의료진이 로비로 모인다. 현지 의료인이 찬양을 인도하고 기도를 한다. 그들의 얼굴은 힘든 오전을 보낸 표시가 난다. 40도의 폭염 속. 그들은 얼굴색도 발갛게 변해 있었고 핏기마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오후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일해야 한다.
 
그런데 헤브론병원에서 확인되는 한가지 한가지마다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지만, 그중 감동적인 것은 현지인을 양육하여 리더로 세워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 암투병 중인 차브릿 군. 항암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의 생사는 불투명하다.     © 크리스찬리뷰

헤브론병원은 사역 초기부터 ‘현지인을 사랑과 봉사, 겸손을 두루 갖춘 리더로 키우는 현장을 만들어 간다’는 의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그 결과, 기도와 찬양은 물론 주일예배 프로그램까지도 그들 스스로 계획하고 진행한다. 교회주보를 만들고, 점심봉사를 하며 마을 순회 봉사 사역도 그들 스스로 한다. 한국인 선교사들은 그저 그들이 필요한 부분을 요청해올 때만 협력한다. 아아, 이 살벌하고 기가 막히는 시대에 맑고 신선한 물줄기 하나가 터져 나온 것이다.
 
헤브론병원이 단순히 현지인들에게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5천여 한국 교민사회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현지 병원을 신뢰하지 못한 교민들은 이곳에 와서 진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점심식사를 하러 오라는 전갈을 받고 식당으로 간다. 식당으로 들어서니 주방사 뚜잇이 기자를 반긴다. 점심만큼은 모든 한국인 선교사들에게 제공된다. 불고기와 야채, 김치와 무국, 화려하진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소박하나 품위 있는 식탁이었다. 선교지의 가난한 식사를 상상했던 배고픈 기자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국은 대체 어떻게 끓였기에 늦가을의 시래기국 맛이 나는지. 하기는 호주에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들 선교지에서 먹는 음식하고 어떻게 비교될까.
 
권순형 발행인이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한다. ‘헤브론병원 카페’의 커피 맛이 보통이 아니란다. 식당에서 나오니 건장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얼굴을 가진 씩씩한 한 남자가 우리를 보더니 손을 흔든다. 커피 목사다.
 
양순식(46) 선교사는 커피와 카페를 통해 선교활동을 하는 선교사이다. 현재 ‘헤브론병원 카페’를 운영하면서 현지인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다. 양 선교사는 “커피는 선교와 전도의 좋은 접촉점이다”며 “교회 내 소그룹 모임과 가정에서도 섬김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양 선교사는 이어 ”현대사회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 중 하나가 바로 ‘비즈니스 선교’다”라고 덧붙였다.
 
양 선교사가 커피와 인연이 맺게 된 것은 커피의 고장 중남미 온두라스 여행에서였다. 커피에 눈을 떴다고 할까. 한 성도가 내려준 커피는 그동안 마셔온 커피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을까. 그때부터 커피와 사랑에 빠졌다. 제대로 커피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장로교신학대 졸업 후 목회에만 전념하던 그가 이 같은 비즈니스 선교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자비량으로 선교할 수 있고 선교사들을 도울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2년마다 열리는 선교한국대회가 있는데 거기에서 전문인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서원했었어요. 그 당시 제가 스무 살이었는데 목회를 하면서 그때 서원했던 그 기도가 생각이 나는 거에요. 그러다가 어느 날 기도하던 중 하나님은 캄보디아 땅을 보여주셨고, 가지고 있는 재능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양 선교사가 교단총회 파송선교사로 가족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온 것은 2012년 5월.
 
▲ 커피콩을 볶고 로스팅하는 양순식 목사(왼쪽). 헤브론병원에서는 그를 커피목사라고 부른다. 커피마니아 김우정 원장과 김명동 편집인이 커피 목사와 함께(오른쪽 아래)     © 크리스찬리뷰

“한인교회에서 김우정 원장님을 만났어요. 그런 후 헤브론병원에 가서 의료진들에게 커피를 내려드렸지요. 반응이 좋았어요. 때마침 한 분이 이곳에도 편의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카페 얘기를 했어요. 사실 당시 헤브론에는 아무 시설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의료진들이나 단기로 오는 봉사팀원들이 굉장히 힘들어 했었어요. 그런 후 편의점시설에 대해 문의전화가 왔고, 제가 운영계획서를 작성하여 드렸는데 적임자를 찾지 못해 제가 작년 4월부터 운영을 하게 됐습니다.”
 
양 선교사의 꿈은 커피지점을 늘려나가는 것이고, 이를 통해 ‘청소년 자립센터’를 세우는 일이다.
 
“캄보디아 청소년들에게 꿈이 없어요.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꿈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면서 일자리를 창출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청소년들이 많거든요. 많은 청소년들이 신앙을 가지고 귀국합니다. 한국에서 지녔던 그 신앙이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모두 한 치의 틈도 없이 오랜 지기처럼 얘기를 나눴다. 동족이란 무엇일까? 어째서 이다지도 스스럼이 없는 걸까.
 
“이곳에서는 이익이 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하하. 그래요. 헤브론카페는 수익구조가 아닙니다. 그냥 봉사입니다. 다만 이곳에서 땀 흘리며 수고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에게 좋은 커피를 대접하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좋은 커피는 몸과 마음을 고칠 수 있다지 않습니까.”
 
양 선교사는 커피를 내려 우리에게 건네줬다. 사랑과 섬김의 그 마음이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기자는 여기가 단박 좋아져 버렸다.
 
양 선교사는 강인애(45) 선교사와의 사이에 한빛(16), 우리누리(15)을 두고 있다.
 
▲ 헤브론병원 직원들이 병원 건물 뒤쪽에서 찬양과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오후. 헤브론병원 전 의료진들이 빙 둘러서서 병원 건물 뒤쪽으로 건축 중인 간호대학 건축현장을 바라보며 찬양과 기도를 했다. 갑자기 차브릿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를 위하여 기도하던 기자에게 하나님이 응답을 주셨다.
 
“얘야, 내가 그래서 너를 만든 거란다.”
 
“하나님, 저를 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이곳으로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과 땀과 부르짖음으로 다져지는 헤브론병원. 이러한 현지인과 이러한 한국인 선교사들이 함께 살고 있는 헤브론병원의 분위기는 한마디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움에 감싸여 있었다.
 
헤브론병원의 모습은 세상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기자에게 끊임없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 <계속>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copyright ⓒ 크리스찬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15/05/26 [14:18]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