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땅, 버려진 사람들

실버부부, 중미를 가다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3/08 [12:04]

<마나구아에서 제 3신>

범죄와 폭력은 일상사 

모두 19명. 지난 번 처음 오리엔탈 마켓에 있는 급식센터를 방문한 후 다시 가서 머리를 깎아준 사람의 숫자다. 빗과 가위로 머리를 다듬어 준 사람이 여남은 사람이고 나머지는 바리캉으로 삭발을 해 주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려 사방으로 흩어져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이들은 한결같이 머리에 한두 군데의 흉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상처가 왜 났으며 그게 언제 났는가 하는 질문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 급식소에서 휠체어를 끌고 있는 전 선교사     © 배용찬

한마디의 말도 통하지 않을 뿐더러 말이 통한다 한들 그들이 순순히 대답해 줄 일도 아닐 것이다. 다만 그들의 살아 온 세월이 고단한 상처로 남아있다는 것을 지례 짐작만 할 뿐이다.

일을 시작한 지 한 시간쯤 되었을까. 저만치 구석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발 일에 정신이 팔려 그 쪽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으나 전 선교사가 그 사람을 부축해서 나가고 있었다.

“선교사님, 무슨 일입니까?”

나는 그가 없는 곳에서 혼자 일하는 것이 아무래도 불안해서 물어보았더니 한 청년이 칼을 맞고 이곳으로 피신해 왔기에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등을 찔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범죄와 폭력은 이곳에서는 일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면서 서둘러 나갔다.

한 나절을 쉬지 않고 가위질을 했더니 손이 마비가 될 정도가 되었다. 마침 전 선교사가 다시 돌아와 겨우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오늘 식사 대접도 못하는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문을 연지 며칠 되지 않는 사역지(병원)에 어젯밤에 강도가 들었다는 것이다. 3인조 강도는 경비원을 묶고 병원집기 일부를 가져갔다는 것이다.

부족한 선교비로 도시빈민들을 대상으로 한 병원을 차리다보니 아직 병원이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시설이었지만 내과와 소아과, 산부인과, 안과 그리고 치과의 소규모 종합병원을 목표로 개설한 병원이 2주 만에 손님(?)이 들은 것이다. 경찰에 신고했는가 하고 물었더니 고개만 절래 절래 흔든다.

경찰에 신고하면 오히려 손해를 더 본다는 것이다. 자세히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나라 경찰의 공신력이 그 정도인 것을 짐작만 할 뿐이었다.

 
▲ 비닐과 거적으로 지어진 빈민들의 집     © 배용찬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던 야곱

며칠 후, 전선교사는 도시빈민이 사는 곳을 보여준다고 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마나구아 시내를 벗어나 북동쪽으로 40분 정도 국도를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꺾어 비포장도로를 한참 가다보니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할 수 없는 오지 마을이 나왔다.

  국도에서 이 마을까지는 송판이나 시멘트벽돌로 벽을 올려놓아 사람이 사는 가옥처럼 꾸며져 있어 제법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 안쪽에 있는 이 마을에 이르면 입구부터가 어수룩하기가 이를 데 없다. 엉성하게 쳐 놓은 철조망을 넘어서면 다듬지 않은 나무 가지들을 세우고 거적이나 비닐을 엮어 바람막이를 한 움막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끔씩 양철로 지붕과 벽을 한 움막들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다. 이곳이 천국(Paradise)이라고 이름 지어진 엘 파라이소(El Paraiso)마을이다.

빈민들을 위해 도시 변두리 지역을 정해 살라고 내어 준 땅에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한 가정 당 약 10평 정도의 땅을 정해 나누어 주는 일뿐 전기나 상하수도는 애초부터 없는 황무지의 집단 주거지인 셈이다. 이곳으로 내 몰린 사람들은 그렇게 질긴 삶을 이어가다보면 또 몇 년 후에는 길도 생기고 가게도 생기는 것을 익히 보아온 정부의 얄팍한 처사에 분 한 번 내 보지 못하는 순박한 국민들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시급히 있어야 할 것은 물과 불일 것이다, 음식을 끓여먹기 위한 불은 인근 산에서 나뭇가지를 주워와 해결할 수 있으나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정부가 모를 리 없지만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 만큼 정부의 형편이 여의치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를 알고 있는 주민들은 스스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어려운 처지의 빈민들이 전구 선교사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먼저 물을 확보해 주는 일에부터 손을 걷어붙였다. 20에이커(약 4만평)에 500가구 정도가 들어선 이 마을에 우물을 파주는 일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었다.

야곱이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듯이 그 역시 마을의 요지 세 곳을 선택해서 우물을 팠다. 굴착기를 들여와 지하 60미터 정도의 암반수를 확보한 다음 파이프를 박아 인력으로 물을 퍼 올리는 원시적인 우물이지만 지금은 800가구 약 4천 명이 식수로 사용하는 생명의 우물이 된 것이다.

 
▲ 전 선교사가 판 세 개의 우물 중 하나     © 배용찬

빈민들을 자신의 이웃으로 섬기는 사람

최근 그는 이 마을 한쪽에 작은 교회 하나를 지었다. 시멘트블록을 이용한 열네댓 평 정도의 아담한 건물이었다. 현지 목사를 모셔 와서 목회를 하도록 모든 편의를 보아주고 자신은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사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기도제목은 이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로 바뀌고 어린아이들이 예수 안에서 바로 앙육될 수 있도록 하는 일, 그리고 이 사회의 지도자를 키우는 일에 마음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오리엔탈 마켓 주위의 노숙자들에게 주린 배를 채워주며 가슴에 그들을 품고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도심의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돌보는 병원사역, 학교사역과 빈민들을 자신의 이웃으로 섬기고 있으면서도 늘 감사가 그의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전 선교사는 버려진 땅에 버려진 사람들만 찾아다니는 특별한 사람이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던 그가 니카라과 땅에 온 것은 이 나라를 다니러 온 선교여행 중에 길거리에 널려진 부랑아들과 노숙자들 그리고 1센트의 온정을 바라고 달려드는 어린아이들을 보고는 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 그를 이곳으로 오게 한 동기라고 했다.

미주립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풀러(Fuller)신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까지 받은 그가 청바지에 작업복차림으로 지난 5년간 이곳의 일에 묻혀있는 사람이 되었다. 언제까지 이일을 할 것이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웃으며 기약이 없다고 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면 갈 것이고 그냥 있으라고 하시면 있을 것이라고 하는 그는 바보처럼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배용찬
멜본한인교회 은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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