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선교지를 뒤로 하고

실버부부, 중미를 가다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3/30 [14:15]

<마나구아에서 제5신>

집을 떠나 3개월씩이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풍습이 다른 곳으로의 여행은 고생의 연속이고 그 중에서도 세계 최빈국의 대열에 서 있는 이곳 중미의 니카라과라는 나라에서 더운 날씨와 풍토병의 위험 속에서 온전하게 몸을 추스른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에 가깝다.

비록 겨울철이라고 하나 이곳 한 낮의 온도가 35도를 웃도는 날씨에 밤만 되면 집 안벽을 타고 돌아다니는 도마뱀과 개미들, 천장에서는 박쥐가 활개를 치고 있으며 예고 없는 정전으로 수돗물이 끊겨 화장실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낸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 땅끝 선교지 중미 마나구아에서 현지 어린이를 안고 있는 배용찬 장로. 선교사의 관심은 이런 어린이들에게 모아지고 있다.     © 배용찬

처음 얼마 동안은 백악관같은 큰 집에 사는 딸네의 모습에 웬 귀족인가 싶어 공연한 호사를 부리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이곳에서 외국인이 생존해 가는 생활의 방편임을 이내 알 수가 있었다.

치안이 불안하여 24시간 경비가 세워져 있는 집단 주거지역에서만이 안전이 보장될 정도이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려고는 아예 맘도 먹지 못하고 있고 어디를 가든 무장한 사설 경호원이 요소요소를 지키고 있어 도시 전체가 사뭇 살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신호에라도 걸려 잠시 서 있는 동안은 양 손에 한 아름씩 이름을 알 수 없는 과일이나 과자 등을 든 사람들이 유리창을 두드리는가 하면 휠체어에 탄 사람을 길 한복판에 세워두고 동전을 강요하는 모습은 한 푼의 동전을 위해 목숨까지도 거는 용기(?)가 가상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10코르도바(약 5센트)나 50코르도바(약 10센트)의 동전을 일일이 건네주는 이곳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듯하였다.

▲ 마나구아 시내의 도시 빈민 거리     © 배용찬

이런 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온 선교사가 열다섯 가정이나 된다. 열다섯이라는 숫자가 많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렇게 열악한 험지의 사람들과 숨을 같이 쉬며 그들 속으로 들어가 살고 있는 용사들이 많다는 뜻이다. 짧게는 6개월 된 선교사도 있지만 거의 모두는 10여 년의 체류경력을 가지고 있고 20여 년이나 된 고참 선교사도 있다. 대부분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현지에 철저하게 적응이 되고 있어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선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민족에게 전하는 행위라고 하지만 2만 선교사를 나라밖으로 내 보내고 있는 한국의 선교활동은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형식에서 탈피하여 나름대로 전략을 가지고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니카라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새워놓고 사역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의 선교전략을 엿볼 수 있었다.

첫째는 선교의 열매를 당대에서 찾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사역에 집중하고 있는 선교사는 어린이들이 성장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이 그 중심에 있게 된다면 그의 삶이 풍요로워 질 것이라는 확신으로 모두 아홉 개 교회를 세워 어린이사역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두 번째 원칙은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세워놓은 교회의 목회는 현지 목사를 발굴하여 이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뒤에서 후원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자신의 업적에 미련을 두고 이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선교는 자신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면 미련없이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자신의 눈높이를 철저하게 그들과 맞추는 것이다. 국민소득이 1천 불에도 미치지 못하는 빈국의 살아가는 형편이 2만 불을 넘보는 한국 사람의 눈에는 그들이 측은해 보이다 못해 자칫 2등 국민으로 낮추어 봄으로써 그들에게 배반감과 이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는 중미 최대의 오리엔탈 마켓에서 급식사역을 하고 있는 전구 선교사의 경우, 폭력배와 마약복용자 그리고 창녀들은 그를 “페스톨 마태”라고 부르며 자기들의 보스나 큰형, 큰오빠로 여기고 있었다. 그것은 전 선교사가 그들과 눈높이를 같이하지 않고서는 그들을 품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 예배를 마치고 현지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 배용찬

최근 전구 선교사의 선교일지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몇 달 전 이곳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 후 2월 둘째 주일에도 ‘마체태’라는 대칼 싸움이 일어나서 시체를 치운 적이 있다. 얼마 전에는 시장에 나갔다가 물장사하는 형제를 만났다. “오랫동안 못 봤네요.”라고 묻는 나의 말에 그는 “예, 마테오 목사님, 센터로 가다가 칼 맞을 뻔 했어요.” 라고 대답했다. 노숙자, 불량배, 매춘, 마약 등이 한 자리에 모이다 보니 지역이 점점 더 험악해지고 있다.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까지도 내어 놓으며 펼치고 있는 니카라과 선교사역은 앞으로도 말씀이 그 땅 끝에 닿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고 더 많은 땀과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아직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니카라과 땅을 뒤로 했다.

하늘에서 본마나구아는 숲에 묻힌 고적한 땅이었지만 그곳에서 이루어야 할 사명을 위하여 누군가가 남아서 땀을 흘려야 하고 그곳에 아직도 말씀을 기다리는 영혼이 있는한 우리는그곳을 잊지않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실것(마28: 20)을 믿기 때문에.〠

 
배용찬|멜본한인교회 은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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