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임하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마 6:10a)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09/30 [11:41]
주님의 기도 두 번째 청원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기도를 드린 후에는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이 임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 땅에서 누리는 천국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전도할 때도 “예수 믿고 꼭 천국에 함께 가자”고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 죽어서 가는 곳일까? 만일 하나님의 나라를 사후 세계로만 인정하면, 우리가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그 의미는 ‘하나님 죽고 싶습니다. 죽어서 천국 가고 싶습니다.’라는 기도가 되고 만다. 과연 그런 의미일까?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와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 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도 갈 수 있지만 살아서도 갈 수 있다. 죽어야만 경험할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살면서도 누릴 수 있는 나라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내세적이면서 동시에 현세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할 때, 영원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현실과 시간 속으로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 중요하다. 이 땅에서 예수님이 전하셨던 메시지의 핵심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도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고, 팔복의 말씀도 천국에 관한 이야기다.

베드로에게 주신 열쇠도 천국의 열쇠였고, 씨 뿌리는 비유도, 겨자씨 비유도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이었다. 신약성경의 처음인 마태복음에만 천국이라는 단어가 무려 36번이나 기록이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도록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해야 한다.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도 함께 가지고 오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곳이다.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닿을 수도 없는 곳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0에서 이같이 증언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 신비로운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대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정의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다. 로마는 당대 최강, 최대의 나라였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모든 것이 화려했다. 먹는 것, 마시는 것이 넘쳐나는 나라였다. 그러나 로마가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물질적인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그래서 모두가 의롭고 모두에게 평강이 넘치고 모두 기뻐할 수 있는 나라,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다. 이 같은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만 가능하다. 성령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가리킨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모든 억압에서 해방되고, 어둠의 권세가 물러가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고, 귀신들이 내어쫓기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는 복음이 전파되고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가 주어지고 눈 먼자는 다시 볼 수 있고 눌린 자는 해방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완전한 평화, 모두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곳,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다.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들, 가난, 질병. 기아, 재난, 전쟁 등과 같은 문제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만 해결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곧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전적으로 내 삶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결단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백날 “나라이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해도 한낱 중언부언하는 주문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통치는 거부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기보다는 내 이기심과 욕망을 따라 살아갈 때가 허다하다. 그런데 과연 이기심과 욕망으로 가득한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겠는가?

예수님은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라고 하셨다.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버린 가난한 영혼, 내 힘과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가난한 인생,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만을 사모하는 가난한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다른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우리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임하는 것이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영광스러운 나라는 내 안에 임하는 것이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는 것이다. 진실로 천국은 우리 안에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인생에는 왜 평화가 임하지 않는가? 왜 여전히 걱정과 두려움, 근심과 상처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까? 밤낮 짜증만 나고, 기쁨은 온데 간데 없고, 삶은 무기력하기만 할까? 그 신비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먹고 마시는 것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나라보다 내 욕망을 이루는 일에 더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맛볼 수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내가 변한다. 하나님의 나라야 임해야 행복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내 삶에 기쁨이 충만해진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천국처럼, 아니 천국을 누리며 살다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 전제된 것이다. 이 세상은 어둠이지 천국이 아니다. 인간이 자기 욕망에 매달린 결과 삶은 윤택해지고 편안해졌을지 몰라도, 이 세상은 불의와 탐욕과 거짓과 부패와 전쟁과 기아와 자살과 살인이 끊이지 않는, 지옥같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의 의미는 이 세상은 어둠이라는 것이 전제된 것이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주님이 보시기에는 이 세상은 언제나 어둠이다. 그 어둠 속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 세상의 빛으로서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빛이 희미하게 보일지 몰라도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다 보면, 그 빛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빛의 자녀로 산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날마다 확장되어 갈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는 것도 저기 있는 것도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서 시작되는 나라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도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도록 내어드리자.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천박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어둠을 밝히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자.

그때, 돈으로 살 수 없고 힘으로 얻을 수 없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한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서 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교회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새롭게 변화시킬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오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그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히 임하기를 소망한다.〠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blog.daum.net/goodseed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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