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양지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10/26 [11:55]

 

“한 개인의 자의식의 기초는 타인의 시선에 달려있다.” -프리드리히 헤겔(Friedrich Hegel)-

 

남호주 애들레이드대학 부설 암 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을 때 어느 30대 동양인 여성 연구원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에게서 친근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서양인들 가운데서 그녀와 내가 몇 명 안 되는 동양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자 그녀는 수줍은 듯 “나는 한국 입양아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호주로 오게 되어 한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한국말도 할 줄 모른다. 미안하다”라고 응답했다.

 

그때 미안하게 느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끄러웠다.

 

그녀는 유전적으로 다른 인종보다는 나와 유사하겠지만 한국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고유한 정체성이 외부 세계가 우리 안에 새겨 넣은 관념의 집합이라면 그녀의 정체성은 한국인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누구라도 미국으로 데려가 키우면 미국인, 덴마크에 입양되면 덴마크인, 프랑스로 입양되면 프랑스인, *심지어 정글에서 동물이 키워 운 좋게 살아남는다면 짐승과 유사해질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카마라와 아마라>, <정글북>의 주인공 모글리, 로마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등 야생에서 동물에 의해 키워진 인간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에 매혹된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했던 야생아(野生兒)들에 대한 기록들에 따르면, “그들은 발견된 후 사람들과 함께 살더라도 인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언어 능력을 갖지 못했으며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일찍 죽었다”라고 알려지고 있다.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원래부터 존재하는 인간의 절대적 정체성이란 없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라고 느끼는 정체성은 내가 태어난 이후 성장하는 동안 주변의 환경이나 교육, 내가 속한 사회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범죄 계층’의 신화, 영국 범죄자들로 시작된 호주에서 반증

 

18세기 중반부터 갑자기 불어닥친 영국의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대거 몰려든 농민들은 기본적인 인권과 사회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절 대다수 도시 빈민으로 전락했다.

 

그 당시 사회상을 담은 한 신문 기사에는 “런던의 길거리 어디에나 버려진 고아들과 소매치기, 매춘부, 도둑들이 넘쳐나고 있다. 범죄자들을 계속 영국 밖으로 내보낸다면 미래의 영국은 범죄가 없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에는 ‘선천적(기질적으로) 범죄를 쉽게 일으키는 사회 계층’(criminal class)이 존재한다는 가설에서 비롯된다. 다행스럽게도 호주의 역사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범죄 계층’이란 없으며 삶의 상황이 생존을 위협한다면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이 인식되기도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 중 하나인 시드니에는 놀랍도록 추악한 역사가 숨겨져 있다.

 

18세기 후반 대영제국은 넘쳐나는 범죄자들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중범죄자들을 신대륙 미국으로 보냈다.

 

그러다 미국이 1775년 독립전쟁을 선포하게 되면서 호주가 죄수들을 수용하기 위한 대안적 식민지로 부상했고, 1788년부터 1868년까지 약 16만 명의 죄수들(남성 80%, 여성 20%)이 형벌로 영국에서 호주로 이송되었다.

 

오늘날 호주인 5명당 한 명은 범죄자의 자손인 셈이다. 이 어두운 과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호주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역사로 남겨있다.

 

그 당시 영국에서는 호주를 “넘쳐나는 범죄자를 버리기 위한 완벽한 쓰레기장, Perfect dumping ground for the excess criminals”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맞는다면 영국은 현재 범죄율이 현저히 낮고 호주인은 매일 강력 범죄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2021년 현재 호주의 범죄율은 영국보다 오히려 낮고, 안전율은 더 높다. 사회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는 자궁 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한 몸처럼 느끼던 태아가 출산이라는 과정에서 모체로부터 떨어지는 순간 나타나는 분리 불안인데 이것이 인간의 근원적 불안이다”라고 주장한다. 분리 불안을 형벌 중 하나로 적용한 경우가 범법자들을 이들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격리 추방하는 것이었다.

 

18세기 말 태어나서 자기가 살던 지역을 크게 벗어나 본 적이 없던 영국의 범죄자들에게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지구의 반대 쪽 어딘가에 있을 호주로 추방된다는 것은 끔찍한 형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화성으로 보내지는 정도로 극심한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런 형벌은 영국에서 범죄율을 낮추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죄수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로 거듭났고 결국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다. 이것은 ‘범죄 계층’이론을 만들고 이것을 토대로 죄수들의 추방을 계획한 자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변 세상이 우리에게 들이미는 거울은 우리가 범죄자가 될 것인지 착한 시민이 될 것인지를 결정할 수도 있다.

 

‘나’라는 정체성은 타인과의 일치와 구분이라는 양극단의 긴장 지대에서 형성

 

나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며 “양지연이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개별적 메시지들로 조합된 퍼즐의 모자이크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덕분에 나는 ‘나 자신’과 대화도 나눌 수 있다.

 

나에게 화가 날 수도 있고 나에게 만족할 수도 있으며 나로 인해 슬플 수도 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나’를 평가하는 나는 내가 평가하는 ‘나’와 다른 정체성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자아’는 우리 ‘자신’의 타고난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라고 질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의 정체성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에 대한 평가나 의견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안의 자신감, 자존감, 열등감 같은 특성들은 ‘다른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판’의 조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는 ‘나’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과 일치되거나 구분되는 양극단의 회색 지대에서 형성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만일 나의 정체성을 타인과 완전히 일치되도록 요구하는 전체주의 사회나 타인과 완전히 구분되는 개성을 요구하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가 있다면 모두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완벽한 동화를 꿈꾸는 사회는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폭력을 촉진하며 ‘나 (selfness)’의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공산주의 실험의 실패를 목격하며 동시에 개인주의가 팽배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면서 질투를 유발하는 끝없는 좌절, 무한경쟁, 나르시시즘적 공격성과 폭력, 빈부의 극단화, 사회적 고립, 고독 등 악화하는 사회 문제들을 경험하고 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예수를 닮지 않는 것만큼이나 세상 사람 모두가 예수를 닮는 것은 똑같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타인과 완전히 일치되어야 할 만큼 악한 존재도 아니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될 만큼 완전히 착한 존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 인간은 다른 포유동물의 새끼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귀여움을 느끼도록 뇌가 진화되어 왔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기능의 뇌를 가진 포유동물인 개, 늑대나 유인원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도 다른 종의 포유류의 새끼를 돌보는 일이 드물지만, 간혹 보고되고 있다.

 

왜냐하면, 파충류에서 진화되어온 동물인 포유류의 뇌는 변연계(Limbic system)가 크게 발달했는데, 이 뇌의 기능은 정서적 반응(기분, 감정, 걱정 등)과 행동을 관장하고, 모성애와 같은 새끼보호 본능을 갖기 때문이다.

 

한편, 변연계가 발달이 안된 파충류(뱀, 악어, 도마뱀 등)는 애완동물로 키우면서 극진히 보살핀다고 해도 포유류인 인간과 개와 고양이에게서 보이는 친근한 유대관계(bonding)는 형성되지 않는다고 알려져있다.

 

 

▲ 양지연     © 크리스찬리뷰


양지연
|ANU 석사(분자생물학), 독일 괴테대학 박사(생물정보학), 카톨릭의대 연구 전임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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