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사랑
 
최주호/크리스찬리뷰

미국에서 부흥회 강사로 오신 목사님과 대화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주기도문의 재발견이었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의 삶에 의미없이(?) 되뇌어지는 기도가 이번에 주기도문의 실제적인 모습을 보면서 새롭게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아무튼 부흥회가 끝나고 난 후에 내 입에서 주기도문은 떠나지 않았다. 강사님의 이야기는 이랬다. 본인과 친분이 있는 은퇴 목사님 한 분이 매주 자신에게 전화로 연락해서 안부를 묻는데 꼭 통화가 끝날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우고 마친다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연배가 있으신 은퇴 목사님이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하면 당연히 후배인 강사님은 함께 전화기를 들고 주기도문을 따라 외웠다고 한다. 하기야 어렸을 때부터 주기도문은 공동체가 함께 외우던 습관이 있었으니, 누군가 선창하면 자동적으로 따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통화 중에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을 본 부교역자들은 처음에는 의아스럽게 생각했지만 자주 보게 된 후로는 목사님이 전화를 받다가 갑자기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하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하 그 은퇴 목사님과 통화를 하시는구나’ 그 모습을 상상해 보니 웃음이 나왔다.
 
평소에는 근엄하던 목사님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이 주기도문을 외우는 모습이 마치 주일학교 학생들이 주기도문을 외우는 모습 같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중에 그 은퇴 목사님의 사모님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인데 은퇴 목사님의 주기도문 사랑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그 목사님의 주기도문 사랑은 목회 사역 내내 다져진 훈련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모님의 말씀은 이랬다.
 
“우리 목사님은 지금까지 평생 하루에 무슨 일이든 새롭게 시작할 때면 언제나 주기도문을 먼저 외우고 시작합니다. 식사나 사무나 운전이나 차를 마시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그러니까 목사님은 하루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우는데 그러면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주기도문을 외웠다는 것이다. 그것도 목회 사역 내내 그렇게 하셨다니… 
 
와우~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기도문 이야기를 하던 강사님은 나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2019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본인도 그 은퇴 목사님을 따라 주기도문을 외우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할 때에, 차를 탈 때에,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할 때에, 그리고 사람을 만날 때에….
 
혹시 어떤 분은 주기도문을 이런 식으로 외우는 것이 타종교의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주기도문을 외우는 당사자에게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목사님은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이전에는 몸이 먼저 움직이던 것이 이제는 주기도문을 외우는 입이 먼저 움직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나도 가만이 있을 수 없어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차를 탈 때와 식사할 때와 일을 시작할 때에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기도문을 외우다 보니 나의 더 형식적(?)이던 일상 기도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솔직히 말한다면 기도가 좀 더 의미 있고 깊어졌다고 할까? 감사하다는 입에 발린 말로 버무렸던 식사 기도나 오늘도 무사히를 외쳤던 운전 기도가 확실히 심오한 영적 단어들(?)로 채워졌다.
 
분명 하고 있는 일은 평범한 일인데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고 그의 이름을 높이는 깊은 기도로 변한 것이다. 종자기 같은 기도의 스케일이 대접 같은 큰 스케일의 기도로 변했다.
 
주기도문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복음서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잘 생각해 보니 복음서에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무언가를 가르쳐 달라고 했던 것이 기도 밖에는 없었다. 제자들은 요즘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어떻게 목회할 것인가?’ ‘어떻게 성경 공부를 인도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위원회를 인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지만, 어떻게 기도할 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배우고 싶었다.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그들의 요구대로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주기도문인데, 주기도문이야 말로 신앙의 엑기스를 요약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기도가 주기도문으로 요약되었다고 생각하니 습관적으로 외우던 주기도문이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찬찬히 주기도문의 내용을 하나씩 다시 들여다보았다. 주기도문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내가 그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지침이 담겨져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한 기도라고 한다면 주기도문은 아무나 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의 말을 빌리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만이 드릴 수 있는 특별한 기도다.
 
그래서 스페인어에서는 한국어의 주기도문 또는 영어의 ‘Lord’s Prayer’라는 이름을 ‘Padre Nuestro’ 즉 ‘우리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부른다. 아마도 구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아버지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다.
 
주기도문은 길지 않다. 헬라어 원문에는 72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고, 영어(KJV)에는 66개의 단어로 이루어졌으며 개역개정판은 151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길지 않은 기도문이다. 하지만 그 강렬함은 다른 어떤 것에도 비길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 안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주기도문의 능력을 알고 외우며 살아가는 자들은 마치 보석함 상자를 여는 것 같은 기대와 설렘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싶다. 그것은 주기도문을 계속 외우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주기도문 외우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인데 실은 강사님도 이미 언급해 주신 것이다.
 
참 오랫 동안 주기도문을 외면했던 것 같다. 예전엔 훨씬 더 주기도문을 많이 외웠었다. 하지만 요즘은 열린 예배나 찬양 위주의 예배를 드리면서 자연스럽게 주기도문을 외우는 횟수도 줄어 든 것이 사실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참 오래 전의 일이지만, 전도사 시절에 김세윤 박사의 주기도문 책을 가지고 수련회 교재를 만들어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하늘에 계신 아바 아버지의 의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청원~ 필요에 대한 청원~ 이런 저런 기도에 대한 삶의 경험들을 덧붙여가면서 집사님들과 함께 밤을 지새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 아득한 옛날이지만 아직도 그때에 주기도문을 통해 느꼈던 그 감사와 감격은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기도야 말로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자신에게는 능력의 한계가 있기에 능력이 무한하시고 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 아버지는 구하는 이에게 흔쾌히 주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는가?(약1:5)
 
결론적으로 기도는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행위와 그 일을 할 수 있는 특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도전받은 주기도문을 외우겠다는 생각이 부디 오래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일상 가운데서 일을 시작할 때마다 몸이 아니라 내 입술이 먼저 움직여졌으면 좋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물론 주기도문을 드리는 내 마음은 이미 천국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면 무언가는 반드시 배운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최주호|멜번순복음교회 담임목사


copyright ⓒ 크리스찬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19/03/28 [17:4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