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행복한가?

송영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10/24 [15:57]
 ©Robert Collins     


처음 교회에 온 형제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교회에 방문을 환영하면서 질문을 했다.

 

“어떻게 교회에 오기로 결정했습니까?”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냥, 나도 교회를 다니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리스찬의 행복한 모습이 가장 강력한 전도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본성상 행복을 열망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형제도 마치 벌과 나비가 꽃향기에 끌려 날아오듯이 행복을 찾아 온 것이다.

 

그 형제는 숱한 세월 재미를 찾아다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재미를 줄 수 있을지 몰라도 행복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

 

행복한 교회, 행복을 주는 성도, 모든 목회자들의 바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행복하지 않은 크리스찬들이 많다. 이상한 것은 교회생활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점점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예수를 믿고 그렇게 행복해 하던 사람들이 잠시 반짝 행복해 하는 듯하더니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무엇을 생각하는가? 예수님에 대하여 흔히 떠오르는 생각은 고난 받는 모습이다. 십자가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홀로 기도하는 모습, 처절한 고난의 모습, 고뇌의 모습이다. 그러나 고뇌하는 이런 모습은 예수의 3년 동안의 공생애만 생각하더라도 며칠 안 되는 사건이다.

 

예수의 평소의 모습은 웃는 모습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많이 웃고, 밝고 행복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잔치를 좋아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엄청 좋아했다. 농담도 좋아하고 별명 짓기도 좋아했다.

 

골방에 혼자 문 닫고 계신 분이 아니었다. 예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태 11장 18절)라고 할 정도였다.

 

우리가 예수의 이미지을 잘못 그리기 시작하면 신앙생활도, 삶도 그런 이미지를 닮아갈 수 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재미없는 그런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예수의 모습은 고뇌에 찬 모습보다는 밝고 행복하고 사랑이 가득한 모습이 더 많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 다음에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사도 바울이다. 사도바울도 사역 환경이 열악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6-18 새번역) 라고 강력하게 명령한다.

 

사도바울이 항상 기쁜 삶을 살지 않으면서 그렇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을 가르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고후 6:10) 이 라고 말했듯이 행복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 행복을 고백하는 사람이 크리스찬의 삶임을 말한다.

 

크리스찬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세상 사람들은 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행복으로 추구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어도 잘 먹고 잘 살자는 오늘 만족주의 삶이며 임금처럼 잘 먹고 황제처럼 누리자는 행복론이다. 물론 세상사람들 모두 이런 원초적인 행복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행복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근본은 자신의 만족의 목적을 향한 행복이다.

 

크리스찬의 행복이란 일차적으로 믿음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의 사랑 때문에 행복하다. 세상적 조건이 아무것도 없어도 영원한 천국를 소망하며 주님과 동행하니 행복한 것이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항상 기뻐하는 삶’(데살로니가전서5:16-18)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로 마음먹고 살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홍예숙 사모의 간증집 ‘나는 진실로 행복한 사람’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간증 중에 고아원 원장을 만난 짧은 스토리는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 날 고아원 원장이 홍예숙 사모가 머무는 기도원에 찾아왔다. 고아원 원장은 너무 속을 썩이는 고아들 때문에 이제는 그만 고아원을 접어야 하나 답을 얻기 위해 오신 분이었다. 사모는 고아원 원장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 주었다.

 

고아원 운영은 개인의 사업수단이나 돈벌이를 위해 하지 말고 고아들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진짜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모가 고아 사역에 함께 동참을 해보니 고아 사역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고아들은 상처 많은 아이들이라 말과 행동… 조심할 것 투성이였고, 그렇게 희생하고 섬겨주어도 그들은 자신들의 상처와 아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반항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도하며 진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들어주고 끌어안아 주었더니 결국 변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신이 행복해지더라는 것이었다.

 

행복을 넘어 ‘목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는 것 같은 간증이었다. 목회란 설교하고 가르치기 전에 나에게 맡겨준 양들과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다 보면 결국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 13:1)

 

크리스찬으로 우리가 세상에 줄 수 있는 복음은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믿지 않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전도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송영민|시드니수정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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