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과 연인

이명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12/22 [12:42]

 

 ©놀뫼신문     

 

한국 사회는 지금 역사관 전쟁 중이다. 영적인 사람이라면 분명하게 그 점을 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역사관 충돌의 흔적이 한국의 인기 드라마들인 ‘미스터 션샤인’과 ‘연인’에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두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두 드라마가 무척 재미 있어 나는 몰입하면서 즐겼다. 물론 TV 드라마는 충분하게 사실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그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토리는 허구적일 수 있어도 그 시대의 왕과 왕족들, 신하들은 허구적인 인물일 수가 없으며, 그런 인물들과 결부되어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전혀 허구적으로 구성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역사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인기 드라마는 그 시대를 해석하는 관점에 대해서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2018년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구한말 일본이 점점 조선을 삼키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일본의 심화되는 침략에 맞서 싸우는 의병들의 항일투쟁을 장엄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 시대 속에서 무장 투쟁 의병활동을 하는 조선의 명문 집안의 딸 고애신과, 백정의 집에서 태어나 양반의 폭정에 부모 잃고 죽임 당할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미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 함대에 몰래 승선해 미국에 건너가서 온갖 고난을 넘어 미해병대 장교가 되어서 조선에 돌아온 유진초이(Eugene Choi) 사이의 사랑을 달달하고 애절하게 그리고 있다. 

  

극중 내내 그들이 나누는 사랑의 대화는 아날로그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멋지다. 이렇게 드라마의 주된 스토리는 아주 다른 배경을 가진 두 남녀 간의 극적인 사랑이지만, 드라마 전체에 담긴 관점은 일본에 맞서 싸운 의병들을 거의 절대적인 선으로 그리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아주 익숙하고 크게 공감하고 열광까지 하는 관점이다. 그렇지 않은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병 고애신에게 연인 유진초이가 던지는 질문 하나는 그 드라마가 주고자 하는 익숙한 메시지에 깊고 강한 도전을 던진다.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 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 나도 하고 싶은 질문이다. 과연 의병 고애신이 총 들고 목숨 걸고 투쟁하면서 지키려 했던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 물론 독립 주권이 있는 나라일 것이다. 특히 일본으로부터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인가? 그 당시 일본의 지배를 피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인가? 유진초이의 질문은 그 다음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지켜진 나라는 양반 노비제도가 철폐된 나라여야 한다는 의미이지 않는가? 

  

그렇게 목숨 걸고 지키는 나라는 여전히 중국에 머리를 조아리는 왕이 다스리고 양반들이 모든 권세를 가지고 평민과 노비들은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나라와 그런 시스템을 지탱해주는 주자성리학이 여전히 지배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그 당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이미 가고 있는 민주적인 인권이 있는 근대국가로 가는 나라여야 하지 않을까? 

  

아쉽게도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그 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무장으로 일본을 대항하는 것에 치중한다. 그리하여 무장 항일투쟁만이 선이라는 역사관을 단단히 시청자들에게 심어 놓는다. 

  

최근에 방영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연인’도 그 시대를 살았던 한 남자와 한 여인의 사랑을 극적이면서도 멋지게 그리고 있는데 그 드라마가 조선사회를 해석하고 있는 관점이 흥미롭다. 

  

주인공 장현은 조선의 명문 사대부의 아들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장철이 주자성리학적 신분질서에 사로잡혀 누이의 연인인 종을 쳐죽이자 누이는 자결하는 것을 보고, 기꺼이 아버지를 떠나 이름도 이장현으로 바꾸고 일종의 조선사회의 반항아로 살아간다. 아버지는 아들이 불에 타 죽은 것으로 알고 산다. 

  

한편 이 드라마는 병자호란 때 심양으로 잡혀가 비참하게 사는 백성들을 보호하지 않는 조선의 왕을 비롯한 조선사회의 무능, 모순 그리고 악함까지 보여준다. 

  

주인공의 연인 길채는 자기를 구해준 것으로 오해한 한 무관과 결혼했으나 그녀의 미모로 인해 예기치 못하게 청군에 의해 끌려가게 된다. 절박한 마음으로 아내를 찾으러 간 남편은 아내가 오랑캐들과 같이 있었다는 말만 듣고는 아내 데려오기를 포기한다. 주자성리학적 조선사회의 큰 모순이 기가 막히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끝으로 가면 주인공이 청나라에 붙잡혀 갔던 백성들을 보호하는 일에 목숨 걸고 일하다 왕의 눈밖에 나 죽을 위기에 닥쳤을 때, 자기가 버렸던(?) 그러나 당시 실세인 아버지를 절박하게 찾아오는데, 아버지는 죽은 아들이 살아있는 것에 충격을 받으며 기뻐하지만, 자기와 자기가 보호하는 백성들을 지켜달라는 아들의 의로운 요구를 들어주기 보다는 주자성리학의 길을 지키기 위해서 자결을 택한다.

 

조선사회의 모순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지막 편에 가서야 모든 것을 설명하는 드라마의 전개가 뛰어나다. 내가 볼 때, 드라마 ‘연인’은 주인공을 통해서 조선사회의 모순을 깊게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본다. 그런 관점을 두 남녀 간의 별나게 뜨거운 사랑 스토리 안에 담아서 펼친 것이다. 

  

한 가지만 말해보자. 적어도 ‘연인’에는 ‘미스터 션샤인’이 담고 있는 반일만이 선이라는 관점과 비견되는 반청만이 선이라고 하는 관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차이가 아닐까?  

  

누가 나를 민족주의자라고 칭한 적이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칭찬이라고 여긴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보아도 우리 민족만 옳고 다른 민족은 틀리다는 가르침은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장자라고 불리던 이스라엘도 우상숭배, 부정부패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가차 없이 징벌하시지 않으셨는가? 

  

역사관은 중요하다. 카아(E. H. Carr)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함으로 현재의 해석으로 과거를 변경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우리만을 역사의 해석자로 여긴다면 하나님을 놓칠 수 밖에 없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분의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역사는 그분의 시각으로 읽을 때 전적으로 올바르게 보게 된다. 성경은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 지를 거의 매장마다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세상의 역사관을 그대로 따라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명구 시드니영락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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