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가진 성장 DNA

최주호/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11/25 [12:35]

2002년 전쯤 시드니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몰링신학교에서 MA과정에 있었는데 그때 마침 듣고 싶은 과목이 PTC에서 개설되어 수강했다. 한 3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중에는 한국 학생도 여럿 있었다.
 
한국 학생들 중에는 베트남에서 선교하시다가 안식년으로 호주에 머물던 선교사님도 있었고, 멜번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공부하러 오신 목사님도 있었다.
 
어느 날 점심 시간에 베트남에서 오신 선교사님의 숙소가 학교와 가까워서 그분의 숙소로 자리를 옮겨 각자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멜번에서 오신 목사님이 자신의 개척 교회 상황을 말했는데 모두가 크게 공감했다. 말씀의 요지는 이렇다
 
당시 교회를 개척하고 한 20명 정도의 유학생들이 모였는데, 이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예배 시간에 늦게 나온다는 것이다. 처음 예배를 시작할 때는 몇 명만 앉아 있어서 목사의 마음을 졸이게 하다가, 묵도를 시작할 때에 한 명, 사도신경 할 때에 또 한 명,  그리고 찬송을 부를 때 한 명씩 들어와 결국 설교할 때가 되면 20명의 숫자가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를 시작할 때에 놀랍게도 그날은 20명의 숫자가 벌써 채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은 속으로 오늘은 더 모이겠구나라고 기대했는데 더 이상 예배당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기대가 기대로 마쳐지는 곳, 그곳이 개척교회라는 말에 모두 격하게 공감했다.  
 
난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안다. 1997년 남미에 있던 교회에서 주일 오후 5시에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에 몇몇 동료 목사님에게 우리의 계획을 말했더니 대부분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이유는 문화가 많이 다른 남미 상황에서는 한인교회에 현지인들이 들어오는 것이 한인들에게 불편할 것이고 또한 끊임없이 퍼주어야 하는 현지인 사역을 얼마나 오랜 시간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는 우려였다.
 
하여튼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했다. 세상에 좋은 일인데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생각 즉 우리에게는 불퇴진의 믿음이 있으니 그 믿음 가지고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전도팀을 꾸려 거리로 내보내고, 찬양팀을 준비시켜 예배를 인도하고, 간식팀을 만들어 예배 후 교제 시간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렇게 현지인 예배를 시작한지 몇 주가 지나고 나는 평소처럼 예배 시간 전에 앞 자리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뒤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예배 시간 다 되었는데 사람이 없어요~!”
 
그 말에 뒤를 돌아다 보니 큰 성전이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그날 따라 무슨 일이 있는지 자리를 잡은 현지인은 단 2~3명에 불과했고 이를 본 집사님이 걱정이 되어 말한 것이다. 일단 집사님에게는 믿음으로 기다리자고 말하고 난 후 나는 눈을 감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그냥 잘하던 한인 목회나 할 것이지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어 현지인 목회까지 한다고 했다가 이렇게 사람도 오지 않는 경우를 만났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도우미로 섬기는 집사님들 앞에서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망신당하는 일 없게 해주소서”
 
당시 솔직한 내 심정이 그랬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셨는지 예배 시작 후에 사람들이 더 들어와 은혜 가운데 예배를 마칠 수 있었는데 그때에 나는 개척교회 목사님들에게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고 또한 그냥 일찍 나와 자리를 채우는 성도에도 목사가 감동받을 수 있음도 알았다.
 
시간은 흘러 그 현지인 예배는 현지인 교회로 자라나고 예배당을 구입하고 독립하여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했지만 가끔 당시를 회고할 때마다 도우미 집사님들 앞에서 체면 세워달라고 기도하는 믿음없는 내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시간은 흘러 2015년에 난 남미를 떠나 멜번으로 왔다. 실은 멜번이라는 곳에서 사역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람의 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으니 그저 순종할 따름이다. 하나님의 깊으신 경륜을 따라 우리의 살 곳이 정해진다는 것은 목회하면서 많이 배웠다.
 
그렇게 멜번에 도착하고 나서 담임 목사 취임 예배를 드리는데 손님으로 오신 목사님 중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시드니에서 공부할 때에 베트남 선교사님의 집에서 만났던 멜번의 개척 교회 목사님이었다.
 
아까 말했던 처음 예배가 시작될 때에 학생들이 오지 않아 마음 졸였다는 그 목사님이 바로 거기 있는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그 목사님에게 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일 참 모른다지만 이곳에서 이분을 만나다니…  
 
당시 20명의 유학생들과 함께 사역하던 목사님의 교회는 크게 부흥했고 내가 시무하는 교회와 기차역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목사님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는 소식에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나는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어떻게 교회가 성장하는지에 대한 소논문을 하나 쓴 적이 있다. 내가 했던 현지인 사역을 정리하면서 쓴 글인데 그 글에서 나는 교회는 겨자씨와 누룩과 같은 성장 DNA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마치 태어난 아기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장하듯이 교회도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교회의 성장이 숫적인 성장이 아니라는 사실은 전제하고 싶다.
 
교회는 숫적 성장보다 성도 개개인의 영적 성장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로 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치 바람을 넣은 풍선처럼 외형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는 것이 교회가 말하는 성장이어야 한다.
 
겨자씨는 자라나서 새들이 깃들 나무가 되고, 누룩은 밀가루를 부풀게 하여 맛있는 빵 반죽이 되듯이 성령의 능력이 내재된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된다. 리디머 교회를 개척해서 세속 문화의 상징인 뉴욕 맨하탄에 새 바람을 일으킨 팀 켈러 목사님은 이 교회의 성장 DNA 를 “열매 맺음”이라는 단어로 달리 표현했다.
 
목사님이 말한 “열매 맺음”이란 교회가 성장이 어떤 목적을 갖고 나아가야 함을 알려준다. 교회가 자신이 속해 있는 세상(도시: 팀 켈러 목사님은 특별히 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을 복음으로 변화시킬 목적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런 의미에서 성장은 언제나 일어나게 된다.
 
당신은 교회가 가진 성장 DNA의 능력을 정말 믿는가? 지난 번 부흥회에 오셨던 강사 목사님의 말씀 중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교회가 문을 닫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닫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닫는 것이다”
 
이 말은 교회가 건물이 아닌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기에 지상의 어느 누구도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진 교회의 문(?)을 닫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교회는 초대 교회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성장을 멈추거나 망한 적이 없다.
 
아니 교회는 어느 시대건 세상의 핍박과 고난을 견뎌내면서 많은 열매를 맺었다. 지금도 제 3세계 교회에서 들리는 많은 간증들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각설하고 멜번에서 개척 교회를 하고 공부하러 왔던 그 목사님과의 만남은 내게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엿보게 해 주었다.
 
교회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생각과 교회가 가진 성장 DNA에 대한 생각인데, 바울이 말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말처럼 주 안에서 힘든 시간을 믿음으로 잘 버티고 견디면 하나님의 때에 열매를 맞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멜번의 그 목사님과 우리 교회 사이에 베트남 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이 베트남 선교사님의 집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에도 베트남 촌을 사이에 두고 서로 사역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연의 일치라지만 참 베트남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이런 것이 하나님의 사용하는 유모어 같지만~ 〠   


최주호 멜번순복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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