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크리스찬이 될 때까지
 
양병구/크리스찬리뷰

 

이민교회 목사를 아빠로 둔 덕분에(?)

 

결혼한 큰 아들이 브리즈번에 살고 있습니다. 큰 아들 부부는 매 주일 아침 8시까지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골드코스트의 한 공립고등학교까지 내려와서 주일예배를 위해서 방송장비를 세팅하고 의자를 예배대형으로 배치했다가 모든 주일 행사를 마친 오후에는 다시 이 모든 장비들을 다시 창고에 넣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두 아이들이 한국에서 이곳 골드코스트에 온 이후부터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지금까지 약 14년 동안 한결같이 주일예배 세팅을 하고 있습니다. 하긴 주일예배를 준비하는 사역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도 따지고 보면 이민교회의 담임목사를 아빠로 둔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덕분에(?)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인해서 온라인으로 실시간 예배를 송출하고 있는 요즘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큰 아들 부부가 토요일에 골드코스트로 내려와서 하루 밤을 자고 주일 오전예배와 오후 청년예배 방송을 송출한 후에 우리 부부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늦게 브리즈번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러던 중에 저희 부부와 큰 아들 부부가 자연스럽게 즐겨 시청하기 시작한 TV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모 방송국에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하는 슈돌(슈퍼맨이 돌아왔다.)이 바로 그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도 어린 자녀들과 함께 하는 TV 프로그램이 일면 장점도 있겠지만 단점이 더 많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 덕분(?)에 큰 아들 부부와 함께 슈돌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습니다.

 

아빠와 두 아들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슈돌 중에서 특히 샘이라는 아빠와 윌리엄과 벤틀리라는 두 아이들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즐겨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들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부제로 꾸며진 슈돌 중에 제가 좋아하는 벤틀리가 기저귀를 떼고 팬티를 입음으로써 형 윌리엄에 이은 2대 팬티맨으로 등극하기까지의 좌충우돌하는 이야기가 전파를 탔습니다.

 

그동안 벤틀리는 형 위리엄이 팬티를 입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심 부러워했었습니다. 그런데 벤틀리가 드디어 기저귀를 뗀 것입니다. 위에는 티셔츠를 입고 밑에는 기저귀가 아닌 팬티를 착용한 벤틀리를 본 형 윌리엄이 “너 팬티 입었어?”라고 말하자, 벤틀리가 형 윌리엄에게 “봤어? 내 팬티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팬티를 입은 아기 벤틀리의 뿌듯함과 행복을 쏟아냈습니다.

 

동생 벤틀리가 처음으로 소변기를 사용하는 일에 도전하자, 선배 팬티맨 윌리엄은 벤틀리의 1대1 과외선생님이 되어 변기 사용법을 속성으로 알려주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윌리엄의 1대1 과외수업으로 더욱 자신감이 넘치는 팬티맨 벤틀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해밍턴즈 가족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나섰습니다. 그러나 식당에 가는 길에 팬티맨 벤틀리에게 첫 번째 위기가 닥쳤습니다.

 

식당으로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 쉬 마렵다고 아빠에게 장난치는 벤틀리의 짖궂은 모습, 정말로 벤틀리가 쉬를 마려워하자 급하게 공원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가서 자동차를 주차한 다음 베틀리를 앉고 달리는 아빠 샘, 그리고 자동차 안에서 동생 벤틀리에게 플라스틱 병에 쉬를 보게 하려고 남아 있는 음료수를 다 마시는 바람에 화장실로 가는 도중에 급하게 찾아온 윌리엄의 위기 등이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실수하는 아들 벤틀리, 격려하고 기다려 주는 아빠 샘

 

물론 팬티맨으로 등극한 벤틀리가 형으로부터 1대1 속성과외를 받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 샘은 실수하는 벤틀리를 향해서 야단치거나 윽박지르는 대신 너무 힘들면 다시 기저귀를 입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호주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난 아빠 샘의 여유와 기다려 주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 저는 두 아이들이 기저귀를 뗄 때 나는 어떻게 했었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저귀뿐만 아니라 매사에 아이들을 다그치고 강요했던 부끄러운 기억들이 떠올라 두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실수하는 우리들, 용납하고 기다려 주시는 삼위의 하나님

 

이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이 성숙한 크리스찬으로 자라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기는 했지만 아직은 어설프고 설익은 우리들을 삼위 하나님께서는 넉넉하게 기다려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실패할 때마다 ‘실패해도 괜찮아’ 하면서 격려해 주십니다.

 

서울 남편과 경상도 아내의 말싸움

 

어느 날 서울 출신 남편이 “우리 국수 끓여 먹자”고 말했습니다. 경상도 출신 아내가 “국시지 국수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국시라고 주장하는 아내와 국수라고 주장하는 남편의 말다툼에 결국 이장에게 가서 물었더니 이장은 “국수와 국시는 재료가 다릅니다. 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부가 다시 이장에 물었습니다. “밀가루와 밀가리는 어떻게 다릅니까?” “밀가루는 봉투에 넣어져 있는 것이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겨 있습니다” 또 이 말을 들은 부부는 이상하다는 듯이 다시 물었습니다.

 

“봉투와 봉다리는 어떻게 다릅니까?” “봉투는 기계로 찍은 것이고 봉다리는 손으로 붙여서 만든 것입니다.” 두 부부의 싸움은 결국 기계로 만든 봉투였기 때문에 국수로 판결 났다지만 과연 이게 싸울 일입니까?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해줄 것을 권면합니다(엡 4:2). 용납한다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남의 잘못이나 입장, 형편 따위를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헬라어의 원뜻은 ‘담요를 덮어준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홍수 후 노아가 벗은 몸으로 있을 때 아들 셈과 야벳이 뒷걸음쳐 들어가 노아에게 옷을 덮어준 일(창 9:23)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권한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허물은 덮어주어야 할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까지도 그 죄를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남의 죄를 드러내어 밝히면 반드시 자신의 죄도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물론 공적인 일에 잘못이 있으면 법대로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 크신 하나님의 용서와 용납의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성숙한 크리스찬이 될 때까지...

 

기저귀맨에서 팬티맨으로 옮아가는 벤틀리처럼, 우리들도 품위있는 크리스찬으로 성숙해 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과 같이 성숙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늘 실패하고 넘어지고 자빠지기를 반복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형 윌리엄과 같이 동생 벤틀리에게 사랑으로 안내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야단치고 윽박지르는 대신 안아주고 기다려주는 아빠 샘처럼 벤틀리의 실수와 장난을 담요로 덮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숙한 그리스천이 될 때까지…

 

 

양병구|골드코스트온누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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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25 [15:5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