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과 설교자
 
김경민/크리스찬리뷰
구약 성경이 가르치는 십일조와 그리스도인의 삶

지난 10월 호 칼럼에서는 구약과 신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다는 대명제를 논하였다. 
 
11월호 칼럼에서는 설교의 본문이 구약일 경우, 설교자는 본문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지 설명하여야 하고, 그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적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구약에서 몇 가지 본문들을 예로 들어 살펴보기로 했는데, 첫번째로 신명기 14:22-29을 고찰하고 있는 중인데, 이 말씀은 십일조에 관한 말씀으로,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들을 주목하였다.
 
1. 십일조는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에서) 잔치를 벌이고, 온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먹기 위하여 마련되었다. (23, 26절)
 
2.  십일조는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분깃을 따로 받지 않은 레위인들이나, 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드렸다. (27, 29절)
 
3. 십일조의 기본 목적은 물질을 우상화하는 욕심을 저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남들에게 후하게 베푸는 덕을 가르치는데 근본 목적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직분을 수행하였던 레위인들과 그들의 가족이 생계를 이어갈 수가 없었고, 레위인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일에 종사하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붕괴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을 심하게 꾸짖으신 것이다. (말라기 3:6-15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십일조의 문제를 언급하고 계신 점에 주목하라.
 
성전에 제사장직을 수행하는 레위인들을 위한 양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를 제대로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복음과 십일조
 
이런 면에서 십일조는 그리스도인들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예수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했던 성전과 제사장 제도에 종지부를 찍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특정한 장소에 가야 했고 (성전), 특별한 사람의 중재를 필요로 했던 (제사장) 시대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다. (히브리서 전체가 이 사실을 13장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신약 성경에 십일조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 이상 어떤 특별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여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개신교는 목사를 사제로 부르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에게 맡겨진 역할도 제사장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오직 유일하신 단 한 분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실 뿐이다.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으니 십일조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은 오히려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만인사제설이라는 말로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십일조의 또 다른 목적인 ‘후하게 베푸는 삶의 원칙’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십일조가 재물을 우상처럼 여기는 죄악을 견제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이었다는 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대로 유효하지 않겠는가?
 
물론이다. 예나 지금이나 죄로 물든 우리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으면 안된다. 예수께서도 이 점에 대하여 얼마나 강조하셨는지 모른다.
 
마가복음 4장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잘 들어보라. 그래서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재물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말씀들을 주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이 주제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김경민|세인트 앤드류스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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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8 [11:18]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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