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는 탐욕을 경계하였다

최성은/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8/25 [11:47]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전체가 9권으로 된 방대한 책이다. 1권부터 6권까지는 페르시아가 어떻게 오리엔트를 통일하고 인도에서 구스에 이르는(에스더 1:1) 대 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는가를 기술하고 7권부터 9권까지는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구약성경의 고레스(키루스), 다리오(다리우스),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왕도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특별히 왕후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는 가장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다양한 나라와 인종들의 문화와 풍습, 종교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특별히 2권의 이집트 문화, 4권의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기록은 따로 떼어내 책을 만들어도 될 만큼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는다.
 
잡다하다 할 만큼 방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역사>는 나름대로의 사관으로 신화를 배격하고 사실을 엄선하여 산문체로 기록한 최초의 역사서이다. 키케로는 이 점을 높이기려 그에게 <역사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헌정하였던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자기가 <역사>라는 책을 쓰게 된 목적을 이렇게 밝혔다.
 
“이 글은 할리카르마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하는 탐사보고서이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인들과 비헬라인들이 이룩한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헬라인들과 비헬라인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데 있다”.
 
역사를 탐구하여 기록으로 남겨 인류의 위대한 발자취가 망각되는 것을 막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의 원인을 밝힘으로 다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던 셈이다.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한 원인을 <탐욕>으로 본 헤로도토스의 관점은 옳았다. 탐욕이란 개인이나 국가가 자신에게 허용된 범위를 넘어 더 많은 재화를 배타적으로 차지하려는 욕망이다. 탐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수성을 지녔고 브레이크 없는 질주끝에 결국은 자신을 파괴하면서 끝나는 속성을 가졌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의 입을 빌어 이 사실을 상기시킨다. 어느 날 키루스에게 신하들이 간한다. “폐하, 우리가 지금 차지하고 있는 이 좁고 울퉁불퉁한 곳을 떠나 더 나은 곳을 차지하도록 합시다. 우리 이웃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고  먼 곳에는 더  많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중 하나를 취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칭찬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와 같은 지배 민족에게는 당연한 일입니다”.
 
키루스 대왕은 이 제안을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으나 <그대로 밀고 나가라>고 허락하면서 아울러 <그럴 경우 지배 민족에서 피지배 민족이 될 각오를 하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그의 경고는 불행히도 들어맞아 페르시아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제국이 되고 말았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의 실패 원인을 교만으로 파악하였다. 그들은 그리스 군대를 무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의 신전을 불태움으로 그들의 신앙에 모욕을 가하기도 하였다. 페르시아 군내에 만연했던 차별대우도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들은 강제로 동원된 터라 전투에 소극적이었는데 부당한 차별에 불만이 많았고 생각보다 강력한 그리스 군의 저항에 부딪히자 전의를 잃고 도주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반면 그리스의 승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결사적인 항전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죽음을 겁내지 않았고 이를 페르시아 인들이 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상위 10%가 나머지 90%의 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산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를 쓰는 사람들의 고달픔이 거의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탐욕은 결코 순항하지 않는 배임을 모두 알게 되기를  <역사>를 쓴 헤로도토스와 함께 빌어 본다.〠

최성은|시드니선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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