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8/28 [22:18]


변호사라는 직업은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고통을 마주보는 직업이다. 이혼을 하고 전 재산을 잃은 의사가 와서 말했다.

 

“위자료를 주고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삼천만 원 밖에 없어요. 시골 외딴 마을의 콘테이너에서 살고 있어요.”

 

그는 한때 재산이 많고 사업도 겸해서 했었다. 그에게 삼천만 원은 불행을 상징하는 금액이었다.

 

강남의 요지에 여러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칠십 대 중반의 친하게 지내고 있는 부자가 있다. 그는 내게 재산이 아마 이천 억 정도는 될 거라고 말했다. 그는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운동으로 동네 고등학교의 운동장을 열심히 걷는다.

 

그분에게 이렇게 권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맨날 빌딩 관리와 세금문제로 골치 썩이지 말고 공기가 맑은 동해 바다가로 와서 사는 게 어떻습니까?”

글쎄 말이예요. 나도 빌딩을 처분하고 그렇게 살려고 오백 억짜리 청담동 빌딩을 내놨는데 팔리지가 않네요. 세금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어요. 그리고 내가 내 집에 사는데도 뭔 놈의 세금이 일 년에 일 억 원이예요. 내 집에 사는데 매달 호텔비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 살아요.”

 

재산은 그의 발목을 잡고 꼼짝 못하게 하는 족쇄 같아 보였다. 얼마 전 변호사를 하는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그가 내게 물었다.

 

“너는 나머지 인생에 돈이 얼마 정도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난 그래도 몇 억은 있어.”

 

이웃집 부자는 이십 억만 있으면 그럭저럭 나머지 인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한 유튜브에서 서민들이 생각하는 평균 금액이 일 억 이천 만 원이라고 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나 미래에 얼마를 가지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은 행복의 조건은 아닌 것 같았다.

 

며칠 전 차를 운전하고 동해안 해안도로를 지나다가 초록색의 잔잔한 바닷가에 혼자 서 있는 푸드 트럭을 보았다. 빨간 녹이 슬어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나 있는 낡은 트럭이었다. 예순 살쯤 되어 보이는 희끗한 머리의 자그마한 여성이 혼자 냉커피와 빙수를 플라스틱 컵에 담아 팔고 있었다. 빙수를 한 컵 사서 먹으면서 물었다.

 

“어떻게 이 적막한 바닷가에 푸드 트럭을 놓고 혼자 있어요?”

 

“원래는 사진작가로 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겸사겸사 푸드 트럭을 만들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바다가 좋아서 여기 있었는데 벌써 오 년이 넘었네요.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저는 시도 쓰고 수필도 써요. 다음 달에 제 시집이 나올 거랍니다.”

 

보헤미안 같이 사는 인생이었다. 그녀는 당당하고 행복해 보였다.

 

내가 사는 묵호에 있는 ‘잔잔하게’라는 작은 책방을 들린 적이 있다. 인도 등 세계를 여행한 젊은 부부가 동해 바닷가에 정착해서 책방을 내고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아내는 실을 꿰어 작은 종이책을 만드는 수공업을 하고 있었다.

 

푸드 트럭의 시인 여성과 책방 주인 부부를 서로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마음이 넉넉하고 잔잔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내 경우는 녹내장으로 한쪽 눈의 보이는 공간이 점점 소멸되어 가는 나는 책을 보고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력을 돌려준다면 가지고 있는 서울의 아파트라도 당장 내줄 용의가 있다. 보인다는 것 만해도 수십 억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중동여행을 하다가 독충에 물려 고생을 한 적이 있다. 피부에 진물이 나 목욕을 못하던 그 당시 뜨거운 욕조 속에 들어 갈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완치된 후 뜨거운 탕 속의 물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행복했다.

 

통풍으로 발뒤꿈치가 바늘로 찌르듯 아플 때였다. 한 발자국 걷는다는 게 정말 행복인 것 같았다. 어떤 영감이 죽을 때 생각했다. 평소 매일같이 산책을 다니던 길가에 있는 찻집에 들려 향기나는 커피 한 잔 했으면 행복하겠다고.

 

행복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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