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통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12/23 [15:06]

 

©Peter Forster     

 

삼십 년 가까운 오래 전의 일이다. 청송계곡에 있는 교도소를 갔다 온 목사가 변호사인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허리와 손을 동시에 묶는 가죽 수갑을 찬 죄수가 깜깜한 감방에서 개같이 엎드려서 양재기에 든 밥을 핥아먹는 걸 봤어요. 죄수도 사람인데 어떻게 국가가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목사의 눈에서 은은한 분노의 불이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목사는 내가 그런 것들을 문제 삼아 달라는 취지였다. 나는 피하고 싶었다. 아직 권위주의의 그늘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때였다. 그런 걸 말하면 비웃음과 억압이 되돌아올 수 있었다. 튄다는 소리를 듣고 소외당할 위험성도 있었다. ​

 

그 얼마 후 목사가 다시 와서 말했다.​ “교도소 안에 미운털 박힌 죄수를 괴롭히는 감방이 있어요. 사람하나 들어갈 만한 비좁은 콘크리트 벽 사이에 사람을 가두는 거예요. 햇빛이 못 들어오게 손바닥 만한 창문마저 철판으로 용접해 버렸어요. 다른 감방을 마주하는 복도 쪽 창도 플라스틱으로 막아 공기마저 희박하게 만들었어요. 이런 일들을 누가 알까요?”​

 

그래도 나는 개입하기 싫었다. 교도소나 검찰이나 법무부 조직이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경찰은 높은 담 안의 수사를 할 능력조차 되지 않았다. 목사가 자꾸만 내게 말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인권유린이 이루어지는 그곳은 당시로서는 하루에 갔다 올 수 없는 깊은 산골이었다. 나는 먹고 살기 바쁜 변호사였다. 나는 그 일을 하기 싫었다. 한 달 후 목사가 다시 찾아왔다.​

 

“먹방에서 개같이 밥을 먹는 그 죄수가 예전에 고관이나 부자집만 턴 유명한 도둑이래요. 훔친 물방울 다이어가 신문에 났던 걸 저도 기억해요. 내가 그 사람을 알아서 부탁하는 거 아니예요. 하도 사정이 딱해서 말하는 거죠.”​

 

그 순간 전율 같은 어떤 느낌이 내게 왔다. 하나님이 강하게 명령하는 것 같았다. 성경 속의 요나처럼 피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재심을 제기하고 인권유린을 말하기 시작했다.

 

한 방송에서 나를 불렀다. 기회라고 생각하고 나갔다. 몇 마디 끝에 진행자가 내게 물었다. ​

 

“일각에서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한번 떠보려고 스타범죄자를 맡아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오물을 흠뻑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먼지 같은 내 존재는 잘 알고 있었다. 고관집의 금고나 벽장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언론의 관심이 그를 이용해서 기사가 되었다. 암흑 같은 방에서 개같이 엎드려 밥을 먹는 그를 스타 범죄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누구일까 하는 원망이 들었다. ​

 

그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가 나왔다. 앵커맨이 뉴스 도중 살짝 비웃는 표정이 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날씨가 더워지더니 감옥에 있는 도둑까지 세상에 대고 헛소리를 하는 것 같습니다.” ​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뉴스에서 앵커맨이 자기의 선입견을 노골적으로 뱉어내고 있었다.

 

며칠 후 담당 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무 공명심이 강한 거 아닙니까?

 

인권유린을 고발하는데 증거 있어요?

 

아니 변호사를 계속할 생각이 맞습니까?”​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내가 공명심으로 하는 것인가? 위선일까? 그것 때문에 일을 하기엔 날아오는 돌이 너무 아픈 것 같았다. 멍이 들고 피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주요일간지의 사회면에 박스기사가 났다. 들뜬 변호사 한 명이 인권을 운운하면서 근거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는 내용이었다. ​

 

가까운 고교 동창 한 명이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

 

“주간지에서 흥밋거리로 네가 변호하는 도둑에 대해 기사를 내보내고 있어. 거지 출신이 부자 집을 전문으로 턴 걸 의적으로 미화해서 말이야. 우리 동창 사이에서는 네가 사상이 이상해서 그런 쓰레기 같은 놈을 변호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어.”​

 

좌파라는 소리였다. 내가 변호를 하는 사람의 어린 시절 거지 동료 중 몇 명이 나를 찾아와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돈을 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내가 좀 맞아야 하겠다며 육체적인 협박을 하기도 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쓰라린 고통 같았다.

 

나는 선을 행하려고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오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오해를 풀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해였다. 그걸 푸는 것은 그들의 의지에 어긋났다.

 

악마가 누군지 그때 알았다. 남을 헐뜯는 자였다. 그들은 개와 비슷했다. 한 마리가 짖으면 수백 마리가 따라서 짖었다. 나는 십자가상의 고통이란 게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선을 행하면서 오해를 받는 것 피를 흘리는 것 말이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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