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어주는 노인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1/23 [19:02]

 

 ©William Bout     

 

25년 전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만났던 ‘주 씨’가 뜬금없이 마음속으로 찾아왔다. 그는 평생을 혼자서 옥수동 산 위의 달동네에서 살았다고 했다. 직장의 하급 기술자로 살던 그에게 노년의 행운이 찾아왔다고 했다.

 

달동네가 개발되는 바람에 온수와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아 살게 됐다. 퇴직금으로 상가 하나를 사서 그 임대료로 노후의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됐다고 자랑했다.

 

늙어서 자칫하면 폐지를 줏으러 다닐 자기 주제에 이렇게 잘 살게 될 줄 몰랐다면서 싱글벙글이었다. 그는 수시로 신문에 나는 패키지 해외여행을 찾아 낡은 카메라를 들고 길을 떠난다고 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하는 순간은 가족이 있는 것 같아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여행 도중 그는 동행하는 사람들의 기뻐하는 표정들을 자기의 낡은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인화한 사진을 예쁜 액자에 담아 선물을 하는 게 취미라고 했다.

 

그는 모스크바 광장의 오색찬란한 양파 같은 탑 밑에 서 있던 나의 모습을 찍어서 선물로 보내왔다. 그냥 있을 수 없어 저녁을 한 끼 사겠다고 연락을 해서 그를 만났었다.

 

“이걸 주려고 가지고 왔는데”

 

그가 만나자마자 배낭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건 작은 도마인데 혼자 살면서 음식을 해 봐서 아는데 도마가 크면 못 써요. 그리고 이건 감자 깎는 칼, 계량컵, 바늘쌈지예요. 이 바늘쌈지는 요즈음 구하기 어려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빗이 있어요.”

 

어린 시절 소꿉장 놀이 장난감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금호동 시장에 가면 돼지고기 한 근에 삼천팔백원해요. 그걸 사다가 잘라서 냉동고에 보관했다가 먹으면 아주 좋아요. 그런데 내가 단 걸 좋아하는 바람에 자꾸만 살이 쪄요. 그래도 아직 당뇨는 없어요.”

 

나는 그와 함께 종로 오가 뒷골목에 있는 생선구이 밥집으로 갔다.

 

“주 선생은 하루 일과가 어때요?”

 

혼자 사는 노인의 일상이 궁금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파트 아래 신문 보급소로 갑니다. 거기는 모든 신문들이 남아돌아가요. 그걸 공짜로 한 부씩 얻어다가 읽으면 금세 두 시간이 넘어가요. 오후가 되면 슬슬 시내로 나가죠. 대형 서점으로 가서 책이 뭐가 나왔나 살펴보고 거리를 산책하다 보면 저녁 때가 되요.

 

그러면 이 밥집으로 옵니다. 이 밥집 여자는 생선을 한 번에 다 굽지를 않고 반쯤 구웠다가 손님이 와서 주문하면 그때 다시 완전히 구워서 내놓죠. 그래야 맛이 좋죠. 그 정성이 대단해요. 밤에는 유선방송을 보는데 NHK 같은 일본 방송은 대충 눈치로 보는데 그래도 기가 막혀요.”

 

뚱뚱한 외모와는 달리 그는 세상 돌아가는 데 민감한 것 같았다.

 

“맨날 혼자 지내는데 밤에 갑자기 아팠던 적이 없어요?”

 

“그런 일 없어요.”

 

그의 단호한 대답이었다. 순간 나는 그의 표정에서 언제라도 죽음이 다가오면 맞이할 각오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의 질문을 일축하는 것 같았다.

 

“혼자 살면서 어떤 때가 힘들어요?”

 

내가 물었다.

 

“어젯밤 열한 시에 갑자기 길거리로 나갔죠. 갈 데가 한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었어요. 술을 먹지 못하니까 술집에 갈 수도 없고 내가 참 고독한 사람이라는 걸 자각했죠.”

 

“늦더라도 결혼을 하시지 그래요?”

 

“아니예요. 평생 혼자서 살아왔어요. 이대로 살다가 갈랍니다. 그게 편해요.”

 

그와 밥집에서 나와 종로 거리를 걸을 때였다. 그가 갑자기 거리의 복권 판매대에서 천 원짜리 복권 한 장을 사면서 말했다.

 

“나는 일주일마다 복권을 한 장씩 사요. 그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꿈을 사는 거죠. 일주일 동안 그 작은 꿈을 가지고 있으면 그래도 즐겁죠.”

 

혼자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의 늙음은 당당해 보였다. 인간이란 결국은 모두 겨울나무같이 혼자서 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을 이겨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가 천국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이 구십 정도일 것 같다.

 

여행하는 사람들 가운데 끼어 낡은 카메라로 조용히 사진을 찍어주던 그의 환영이 떠오른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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