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입을 빌린 하나님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3/27 [15:47]

갑자기 예전에 쓴 글 하나를 펼쳤다. 사십 대 중반무렵의 내가 대학로 까페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새벽 무렵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 정류장을 서성거리고 있다. 택시 정류장 부근은 온통 쓰레기 더미고 그 앞에 빈차등이 켜져 있는 택시 세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택시의 기사는 모자를 푹 눌러쓴 이십 대의 청년이었다. 터지기 직전의 폭탄 같은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두 번째 택시의 기사도 얼굴에서 범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한 느낌이다. 시의 경계를 넘어가면 뒤늦게 시비조로 추가요금을 요구하는 기사들이 있어 불쾌했던 적이 있었다.

 

세 번째 택시기사는 마음이 좋아 보이는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핸들 앞에서 망연히 수은등이 켜 있는 검은 길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우수가 깃든 시선이었다. 나는 그 차의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앉았다.

 

“앞 차도 있는데 어떻게 제 차를 타주셨습니까?”

 

운전기사가 내게 물었다.

 

“마음이 좋아 보이셔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입니다. 저녁에 천안까지 가자는 손님이 있었는데 고속도로가 휑하니 뚫려서 금세 갔다 왔어요. 얼마든지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손님을 생각해서 규정 속도를 지켰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분당을 가시겠다고 하니 저는 수지맞은 겁니다. 택시 기사들을 보면요 무리하게 합승을 하고 속력을 냅니다. 또 언덕길이나 손님을 태우고 갔다가 빈 차로 나올 만한 곳은 절대로 가지 않으려도 해요. 그런데 제가 이 일을 해보니까 그렇게 하면 안돼요. 손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구요. 사람마다 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의 분량이 있는데 그저 욕심에 헐떡이죠.”

 

사람마다 타고난 그릇이 있다. 거기에 채울 만큼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두더지가 강물 앞에 있어도 그 작은 배를 채울 물만 있으면 된다. 숲이 무성해도 새는 자기가 앉을 나뭇가지 하나면 된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살았다.

 

어느새 차는 성수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하얀 달빛을 받아 검은 강물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손님, 제가 조금 더 주책을 떨어도 될까요?”

 

기사가 백밀러로 나의 눈치를 보면서 양해를 구했다. 어쩌면 늦은 밤에 마음을 나누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양해를 하자 그의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는 육육학번으로 문과대학을 졸업하고 이십오년 동안 건축설비를 생산하는 공장을 했죠. 사장이었지만 기계를 만져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날따라 갑자기 프레스를 직접 조작해 보고 싶은 거예요. 직원에게 물어 기계를 작동하는 순간 손가락 세 개가 뭉텅 잘려 나간 거예요.

 

손가락을 들고 병원에 갔는데 붙일 수가 없었어요. 일본까지 가서 수술해 보려고 했지만 헛수고였어요. 장애자가 됐는데 불행이 삼박자로 바로 밀려드는 겁니다. 아이엠에프 외환위기가 닥치고 부도가 나서 공장문을 닫았죠. 저는 갑자기 실업자가 된 겁니다. 막내 아들이 대학을 다니는데 등록금도 못주는 부모가 되어 버렸죠.”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마주친 사람들을 더러 보았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하기도 하고 어느 날 밖으로 나가 노숙자가 되기도 했다. 나는 조용히 그의 다음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야 겠더라구요 그래서 구청에 가서 일자리를 달라고 사정사정했죠. 손가락이 없으니까 일용직도 하늘의 별따기더라구요. 그 다음은 택시회사를 찾아갔죠. 손가락이 없는 걸 보고 안되겠다고 하더라구요.

 

더 물러설 곳이 없었죠. 무릎을 꿇고 간절히 사정하니까 마지못해 폐차 직전의 스틱기어 택시를 한대 내주면서 해보라구 하더라구요.

 

손가락이 없어 스틱을 잡기도 힘들었고 사납금을 채우기도 애초에 불가능했죠. 내 돈으로 부족한 사납금을 채우면서 손바닥으로 기어를 조작했어요. 두 달쯤 흐르니까 택시회사 상무가 오토매틱 차를 배정해 주더라구요. 정식으로 택시기사로 취직을 한 거죠.”

 

어느 새 차가 성남의 모란시장 부근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얘기는 결론 쪽으로 가고 있었다.

 

“대학을 나오고 사장을 하던 사람이 택시를 모니까 처음에는 스스로 위축되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집사람의 불평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열심히 사는데 어떻습니까? 마음 한 번 바꾸니까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나밖에 몰랐습니다.

 

그러다 내가 힘들어 보니까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더라구요. 전에는 평생 힘들게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이 이상해 보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저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핸들을 잡을 생각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막내놈 군대 가기 전에 따뜻한 스웨터라도 하나 사 입혀야죠.”

 

그날 밤 나는 형님 같은 택시기사에게서 배운 철학을 써 두었었다. 팔십 대가 된 그 기사는 아직도 핸들을 잡고 있을까. 세월이 흐른 후 그 글을 보니까 다른 생각이 든다.

 

성경을 보면 예언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듣는다. 불경을 보면 깊은 내면의 진아(眞我)가 수도자에게 진리를 말해준다. 영인 하나님은 입이 없다. 나 같은 속인에게는 평범한 택시 기사의 입을 도구로 내게 말씀해 주신 건 아니었을까?

 

그 시절 진리를 설파한 예수님도 인간의 눈에는 가난한 청년 목수였지 않나?〠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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