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아홉 명의 뮤즈들

최성은/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3/28 [16:31]
나나 무스꾸리

그리스 음악하면 나나 무스꾸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긴 생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아테네의 하얀 장미>나 <하얀 손수건>을 부르던 그녀를 내 나이의 독자라면 누군들 모르리.
 
이 글을 쓰면서 사진을 찾아보니 왼쪽 볼에 검은 점이 있던데 나도 그때는 몰랐다. 스타이면서도 스타인양 하지 않고 그저 수수하던 모습이 매력적이었던 나나, 내가 지금도 트윈 폴리오(송창식•윤형주)의 앨범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녀 탓이 크다.                                             
 
어쩌면 <아프로디테의 아이들/ Aphrodite’s Child>을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스의 유명한 털복숭이 5인조 그룹. 데미스 루쏘스가 기타를 치고 반젤리스가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며 부른 <비와 눈물/ Rain and Tears>을 기억한다면 나와 당신은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다. <비와 눈물은 같은 거예요. 그러나 태양 아래선 눈물을 빗물인 척 할 수 없어요> 그렇게 이어지던 노랫말이 참 좋았지. 루쏘스의 바이브레이션은 묘한 데가 있었고.
 
그러나 그리스에 나나 무스꾸리나 아프로디테의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세이킬로스도 있다. 오래 전 터키의 에베소 근교 아이딘에서 철도가설 작업 중 원통형 돌비 하나가 발견되었다. 터키는 고대 그리스의 영토였다. 세이킬로스의 비석이라고 명명된 그 돌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원통형 돌비
 
“나는 묘비요 상(像)이다. 세이킬로스가 불멸하는 기억의 영원한 상징으로서 나를 이곳에 세웠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결코 그대 슬퍼하지 말라.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시간은 마지막을 청할테니”.
 
학자들의 오랜 탐구 끝에 이 돌비는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한 남편이 세운 것이며 돌비에 새겨진 글과 문자기호는 노래가사와 악보이고 세이킬로스는 죽은 여인의 남편이 아니라 이 노래의 작곡가라는 사실을 알아 내었다.
 
세이킬로스의 비석이 발견되면서 인류는 완벽하게 보존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악보를 얻게 되었다. 주전 3-4세기 경 그리스는  문자기호로 표시하는 악보기록법을 창안했는데 그것의 실제적인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역시 그리스는 음악에서도 세상의 기원임을 놓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음악을 즐겼다. 신전에서의 제사의식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결혼식과 장례식에서도 음악은 빠지지 않았다. 군사들이 행진할 때나 운동경기에서, 일할 때나 춤추며 놀 때도 늘 음악과 함께 했다. 연극에서는 춤과 노래와 연기가 제대로 어우러질 때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음악을 그릇으로 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악기도 만들어 사용했다. 도기그림에 나오는 악기는 대부분 키타라와 아울루스를 그린 것인데 키타라는 현악기의 일종이고 아울루스는 피리의 일종이다. 이 악기들을 사용하여 그리스인들은 한층 흥겹게 여흥을 즐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사람들은 음악을 즐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음악을 그릇으로 보았다. 음악에 철학이나 학문을 담아 후세에 전하고 가르치는 용도로 삼았다. 피타고라스가 기보법을 발견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순수 음악인들에게는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나 음악은 철학자들에 의해 사상을 실어 나르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던 것이다.
 
제례의식에서의 그리스 음악은 히브리 음악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9명 뮤즈의 음악은 다윗의 시편과 비교해 수준미달이다. 다윗은 시와 음악에 있어서도 달인이었다. 이스라엘의 지휘자를 따르는 성전 성가대나 연주자들의 찬양과 연주는 참으로 장엄했다. 예배음악에 있어서 아테네는 예루살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성은|시드니선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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