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좌충우돌의 학습을 통해 서서히 다듬어져 간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 생각이라면, 또 품격을 유지할 생각이라면 당신도 끊임없이 보완되고 개혁되어야 한다.
개신교는 종교개혁을 통해 태어나 이만큼 자랐다. 현대 민주정치의 원천이라 평가받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도 끊임없는 개혁을 통해 완성되었다. 솔론과 클레이스테네스, 그리고 페리클레스를 공부해 보면 이 말이 틀리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솔론의 개혁 개혁의 첫주자는 솔론(Solon)이다. 그는 아테네의 7현인중 한 사람이다.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주전 6세기 말엽 아테네가 빈부의 격차로 인해 내전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시민들은 한명의 지도자를 세워 그에게 전권을 주고 사회전반에 관한 개혁을 맡기기로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조정자로 뽑힌 사람이 솔론이다. 솔론은 귀족들이 독점해온 고위공직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재산만 있으면 누구든지 아르콘(최고공직자)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재산의 정도에 따라 시민을 4계급으로 나누고 제3계급까지는 누구든지 공직에 오를 수 있게 했다. 다만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제4계급은 민회에 참가할 자격과 배심원 자격만 주었다. 그러나 민회에 참석하여 토론하고 투표하는 일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법을 만들거나 민회에 안건을 상정하는 일은 아르콘을 거친 귀족들로 구성된 아레이오파고스에서만 할 수 있었다. 솔론은 400인 회의를 만들고 모든 안건은 이곳을 경유하도록 했다. 애석하게도 솔론의 개혁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부자들은 자기들만 손해봤다고 생각했고 가난한 자들은 얻은게 없다고 불평했다. 재산에 따른 참정권의 제한은 금권정치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솔론은 <모든 사람을 만족케 하는 일은 어렵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 나야 했다. 클레이스테네스(Cleisthnes)의 개혁 솔론이 제한한 참정권을 모든 시민에게 개방한 것은 클레이스테네스이다. 그는 아테네의 행정구역을 부족중심의 4구에서 지역중심의 10구로 확대개편하고 50명의 대표자를 파송받아 5백인 회의를 만들었다. 5백인 회의는 전쟁, 선거등 국가의 모든 문제를 토론하고 결정하였다. 그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도편추방제/Ostracism>는 특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가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사람, 독재자가 될 소지가 있는 사람을 주민투표로 가려내어 국외로 추방하는 제도이다. 6천 표 이상을 받은 사람은 무조건 10년 동안 해외로 추방되었다. 공공의 적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좋은 제도였지만 실행 중에는 악용되는 사례도 많았다고 한다. 페리클래스(Pericles)의 개혁 정치참여는 경제적인 여유에서 나온다. 당장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시민이 밭을 떠나 아고라에서 토론에 전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페리클레스의 개혁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 들었다. 그는 가난한 공직자가 생계를 염려치 않고 공무에 전념하도록 월급과 함께 다양한 혜택을 주는 제도를 만들었다. 드디어 국가공무원이 출현한 것이다. 솔론을 통한 귀족정치의 마감, 클레이스테네스를 통한 500인 평의회 중심의 정치, 페리클레스의 공무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잘 어우러져 고대 그리스의 정치는 민주주의 원천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다. 한국이 4월 13일 총선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 선거혁명이라는 사람도 있고 산수를 수학으로 푼 민중의 지혜라는 해석도 있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라기는 투표에 나타난 국민들의 마음을 정밀하게 읽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일을 잘 감당하는 의원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란다. 특별히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의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솔론, 클레이스테네스, 페리클레스 같은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한가. 〠 최성은|시드니선민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