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역사적으로 1620년 12월 26일에 미국 플리머스 (Plymouth) 항에 상륙한 오늘의 미국의 조상인 청교도들에 의해서 시작된 절기이다.
그곳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황금보다 귀한 신앙의 자유를 성취한 것을 감사하며 교회를 세웠다. 오늘의 미국은 바로 이 청교도 신앙의 뿌리 위에 세워진 나라이다. ㅁ 당시 불모지에 도착한 그들은 혹한 굶주림, 풍토병, 맹수의 공격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49명 만이 살아 남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씨를 뿌려 첫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다.
청교도들은 추수한 햇곡식과 채소를 하나님께 드리고, 인디언들을 초청하였다. 인디언들은 구운 칠면조와 호박파이를 가지고 와서 나눈 것이 추수감사절의 요리가 되었다. 감사의 축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청교도들은 정든 고향과 본토 아비 집을 버리고, 사선을 넘어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미국 땅에 정착한 것이다. 그 첫 해에 씨를 뿌리고 얻은 수학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어떠했을까? 극한 고통과 죽음의 고비에서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순례자들이 정착한지 삼 년째 되던 해에 주지사였던 윌리엄 브래드포드 (William Bradford)의 감사절 선포문은 더욱 감동적이다.
“위대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금년에 옥수수와 밀과 강낭콩과 과일과 채소를 풍성히 내려 주셨고, 또한 사냥감이 풍성한 물고기와 조개가 있는 바다를 주셨도다.
또한 우리를 인디언 민족의 밥이 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고, 흑사병과 각종 질병에서도 목숨을 지켜 주셨으며 또 우리에게 양심을 따라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 주셨도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의 행정관인 나는 1623년 곧, 그들 순례자 일행이 이 터전에 상륙한지 제3년에 11월 29일 목요일에 거기서 그들의 목사님에게 말씀을 들으며 이 모든 축복을 인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을 선포하노라.”
오늘 우리는 그들의 생활환경과 비교해 보면 천지차이가 난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풍요롭고 쾌적한 때가 있었던가?
21세기 현대인들은 놀라우리만큼 좋은 환경 속에서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며 많은 소유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감사가 별로 없다. 교회당에 그렇게 많이 들락거리면서도 얼굴은 굳어 있고, 가슴이 메말라 있다.
주인 없이 길거리를 방황하는 개도 썩은 감자를 사흘만 주면 사람을 알아보고 꼬리를 친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한없는 주님의 은혜 속에 거하면서도 불만 불평으로 가득 차 있다.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이다. 왜 감사가 없을까? 심령이 가난하지 않고 세속적인 가치에 취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본시 인간은 배가 부르고 등이 따스하면 감사를 잊어버리기 쉬운 존재라고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죄와 허물로 사망에 덫에 걸린 우리를 십자가의 피로 구속하시고 의롭다 하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다. 이보다 더 큰 감사 제목이 있을까?
마틴 루터는 “마귀의 세계는 감사가 없다”고 했다. 감사는 하나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금년 한 해 동안의 감사의 제목들을 세세히 열거해보고 그리스도인의 향기인 감사(thanks)를 행동(giving!)으로 표현해 보자. 그러면 은혜가 갑절로 임할 것이다.〠
홍관표|본지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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