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배자입니다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2/23 [17:24]

필자가 주일마다 예배 드리는 교회는 "나는 예배자입니다" 라는 찬양으로 예배를 시작한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 내가 서 있는 곳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 내 영혼 거룩한 은혜를 향하여 내 마음 완전한 하나님 향하여 이곳에서 바로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1절).

 

이 찬양의 가사처럼 내 평생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보여, 그분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예배 드리는 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꼭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첫째로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예배는 영어로는 ‘worship’인데, 이 단어는 ‘worth’ (가치)와 ‘ship’(신분)의 합성어로 "신분에 합당한 가치를 흘려 드린다. 존경을 보낸다" 라는 의미가 있다. ‘예배’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는 히브리어 ‘샤하’는 "엎드려 절한다. 경배하다"라는 뜻이고, 헬라어 ‘프로스퀴네오’는 "절한다. 입을 맞춘다" 라는 뜻이다.

 

이처럼 예배는 하나님께 합당한 경외와 존경과 영광을 표현하여 엎드려 절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예배는 나 자신의 만족과 기쁨을 위함이 아니고, 오직 우리의 예배 대상이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함이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을 경외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의 대상인 것이다.

 

둘째는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보통 “예배를 본다”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인식의 표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얻기 위해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기 위해 교회에 온다.

 

우리의 찬양, 기도, 마음, 물질, 주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온다. 예배는 하나님과 구원받은 영혼 간에 계속되는 사랑과 생각의 교감이다.

 

셋째로 예배의 행위보다 예배자가 더 중요하다. 가인과 아벨 형제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농사꾼만 가인은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제사 드렸고 목동인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아니 하셨는가?

 

아벨은 예배하는 사람이었지만, 가인은 단지 예배 행위를 하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제물의 내용보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 곧 예배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배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자세가 더 중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배 드리기를 힘써야 만한다. 예배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특히 교회에 모여 드리는 공동체의 예배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온 민족과 족속과 방언이 드리는 예배의 예고편이고 삼위일체 공동체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성전에 모여 시와 찬미와 악기로 예배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날이 가까이 올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 (히 10:25) 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우리가 공동체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온전한 예배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를 힘쓴다. 또한 온전한 예배자는 개인적인 예배 (삶의 예배)와 성도들이 모여서 드리는 공동체 예배의 균형을 이루며 예배를 드린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소원한다.〠

 

홍관표 본지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 홍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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