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생명활동

배용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11/25 [14:57]
나무를 스치는 바람도 예사롭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며 들에 핀 민들레꽃도 그 속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과학이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분야였다.

산과 들에 무수히 피고 있는 아름다운 꽃은 종족보존을 위하여 있다고 한다면 그 치장이 너무 과하며 움직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식물이라고 하여 감각이 없는 생물체라고 한다면 이는 무지의 소치이며 황홀한 단풍의 색은 영양분을 체내에 보관하여 월동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 그 색을 내기 위하여 당분이 깊이 축적되어야 하고 카로틴과 크산토필 그리고 화청소라 불리는 플라보노이드색소가 가세함으로써 가능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식물은 나름대로의 신비한 생존방식으로 인간과 동물의 유익을 위하여 생육하고 번식하면서 자연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이런 식물로 인하여 그 뒤에 나타난 동물들이 생존할 수 있게 한 것은 축복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와 곤충들 역시 이런 환경에 살아갈 수 있도록 가장 알맞게 설계되어 있으며 물속의 고기도 특유의 생존방식을 가지고 있다. 누가 어떻게 이들에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새와 물고기 그리고 땅 위에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은 이렇게 특유의 영역 안에서 평화스럽게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네 발 달린 짐승이 물속으로 들어가서 고래가 될 이유가 없으며 도마뱀이 날개짖을 하면서 하늘을 날지도 않았는데 진화했다고 억지를 쓴다.

이런 동물들의 생명활동을 연구해 본 인간은 그 기관의 발달과 기능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아무리 인간의 지능이 발달한다고 해도 그런 고차원의 컴퓨터는 만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체의 기관과 조직은 더욱 신비의 덩어리이다. 숨을 쉬고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밀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생각하고 느끼는 사고와 감각의 영역에 이르면 도무지 인간이 손을 대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지구상 어느 생명체도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장 적절한 생존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환경에 생존을 위하여 다소의 적응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를 두고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진화가설은 그 자체가 삶에 대한 성스러운 명령에 억지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인간을 희생시키겠다는 인본주의가 그 바탕에 깔려있고 그 인본주의 밑에는 진화론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회 도덕적 윤리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복제인간이 탄생하는 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고유영역을 침범 당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사람들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생각만 해도 섬뜩해 진다.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하나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님이 스스로 생기를 불어넣으신 그 생명을 돌아보지 않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생명을 물질로 취급하는 진화론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은 역사에서 보아 알 수 있다.

과학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이 진화론의 허구를 지적하면 잘못된 신앙으로 과학을 재단할 수 없다고 오히려 반격해 오기 일쑤다. 그들은 하나님이 있고 그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설명되지 않았던 고리가 풀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러는 것이다.

자연에서 생존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속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의 계획과 손길이 닿고 있다는 느낌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눈을 가리고 귀를 닫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뿐이다.〠

배용찬|멜본한인교회 은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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